콘텐츠목차

김제 관성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06
한자 金堤關聖廟
영어의미역 Gimje Gwanseong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건립시기/일시 1861년(철종 12)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지정되지 않음
문화재 지정일 지정되지 않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 있던 조선 후기 사당.

[개설]

관성묘(關聖廟)는 중국 촉한의 무장 운장(雲長) 관우의 묘(廟)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관성묘로 격상하여 부르고 있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관우를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우의 신령이 나라나 적을 섬멸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으로 명나라 군대가 내원하여 일본을 남쪽으로 격퇴시킨 공이 모두 관우의 음조(陰助)에 의한 것이라 하여 관우묘를 세운 것이 그 시초였다. 서울에는 동묘와 남묘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모두 중국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조선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장신(將臣) 등으로 갑주(甲胄)를 갖추어 예를 드리게 하였고, 왕이 친림하는 경우에는 ‘재배례’를 행하는 등 관왕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현재 전라북도에는 전주, 남원, 김제에 관성묘가 남아 있는데, 김제에는 김제시 요촌동공덕면에 있다. 건립 배경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제사의 양식과 1959년 하계호가 발행한 관우의 가계, 행적, 그리고 조선에 관성묘를 건축한 내력을 기록한 『명성경(明聖經)』의 내용으로 보아 도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변천]

김제에서 중국 무사 관우를 모시는 사당은 1861년(철종 12)에 건립되었는데, 서암동에 살던 조계식이 자신의 땅을 희사하여 세워졌다. 그 후 신도들의 도움을 얻어 개건과 증축을 거듭하나다가 결국 폐사(廢祠)되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으로 서울을 비워 두고 피난을 간, 우유부단한 선조 임금과 무능한 조정 대신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이 나라를 지켜준 것이 관우의 음조라 여겼기에 관우신을 의지하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