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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관성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07
한자 孔德關聖廟
영어의미역 Gongdeok Gwanseong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 26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관성묘
건립시기/일시 1880년(고종 17)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 26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동계리에 있던 사당.

[개설]

중국에서는 관운장(關雲長)을 신으로 신봉하면 전시에 관운장의 신령이 나타나 적을 섬멸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관성묘는 중국 촉한의 무장이었던 관운장의 사당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관왕묘라 부르고 있어 동일한 뜻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공자의 묘를 문묘(文廟)라 하는데 대해 무묘(武廟)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비워 두고 피난을 떠난 선조와 무능한 조정 대신들이 백성의 비난을 받았는데, 이때 명나라 군대가 내원하여 일본을 남쪽으로 격퇴시킨 공이 관운장의 음조(陰助)라 여겨 관운장에게 의지하고 소원을 빌며 관성묘를 세운 것이 그 시초이다.

조선조에는 연중 두 차례 장신(將臣) 등으로 갑주(甲冑)를 갖추어 예를 드리게 하였고, 왕이 친림하는 경우에는 재배례를 행하게 되어 있는 등 관성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한말 이후 공식적인 제사가 폐지됨에 따라 신도들이 관성묘를 관리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사의 양식 등이 나와 있는 경전(經典)인 『명성경(明聖經)』은 관우의 가계와 행적, 그리고 조선에 관성묘를 건축한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유교보다 도교적 색채가 농후하여 좀 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변천]

1880년(고종 17) 어느 날, 당시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 동계리에 사는 박옹(朴翁)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자, 그 꿈을 좇아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공덕 관성묘를 지었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매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황]

2010년 현재는 관성묘는 폐사(廢祠)되고, 그 터에 주택이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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