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64
한자 柳志和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Yu Jihwa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산 64-2[만경로 600-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804년(순조 4)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산 64-2[만경로 600-92]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지정되지 않음
문화재 지정일 지정되지 않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유지화의 정려.

[개설]

유지화(柳志和)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준성(俊聖), 호는 반구당(泮鷗堂)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자 3년 동안 무덤 곁에서 움막을 짓고 정성껏 모신 다음 계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인조 때에 이르러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참봉 벼슬을 받았고 다시 주부에 올랐다. 이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자 유지화가 왕을 뵙고 눈물을 흘리니 인조유지화의 충성에 감동하였다.

유지화는 당시 척화하는 선비들을 찾아가 앞장서 연명으로 상소를 올리어 척화하는 것이 나라의 기본임을 주장하는 시를 지어 올리니, 유지화의 훌륭한 충성심과 효심은 당시 유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 후 숙종 때에 이르러 정려를 세우고 만경 남산사에 주벽으로 위패를 모시어 그 충절을 기리고 있다.

[위치]

김제시청에서 만경읍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6.9㎞쯤 가다 보면 성덕면 묘라리 양수장 조금 못 가서 오른쪽에 두무동 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550m 정도 가면 오른쪽에 남산서원(南山書院)이 있고, 그 서원 뒷자락을 돌아가면 서원 동쪽 바로 옆에 유지화 정려가 있다.

[변천]

정려각의 편액에 의하면 1804년 12월에 명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 겹처마 기와집이다. 사방에 홍살문을 둘렀으며 단청을 정교하게 장식해 놓았다. 돌기둥은 약간 높은 것을 사용했고 기와는 수막새와 암막새기와를 사용했다. 정려 편액에는 ‘충신효자통정대부행회덕현감유지화지려(忠臣孝子通政大夫行懷德縣監柳志和之閭)’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유지화는 관직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마쳤으며, 계모에게도 변함없이 효성을 다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을 포위한 호군의 포위망을 뚫고 인조를 알현하여 충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송준길(宋浚吉)유지화를 평하길 ‘항상춘풍기상(恒常春風氣像)’이라 칭송하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