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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95
한자 聖堂
영어의미역 Catholic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엽, 김승대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천주교의 종교 의식이 행해지는 회당.

[개설]

김제 지역에서는 1866년에 일어난 병인교란 때 순교자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1879년에는 드게트(Deguette) 신부가 금구배재에서 잡혀 추방되었다가 1881년 뭬렐 신부와 함께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한때 금구에 피신했다고 전한다. 1894년 동학혁명 이후 가톨릭 선교가 용인되자 말세로구 신부가 전주 이(李) 진사라는 사람의 재실을 구입하여 지금의 금산면에 있는 성당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것이 김제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개화기 전라북도 지역의 천주교와 성당 건축]

1. 천주교의 전파

천주교는 1784년(정조 8)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하여 종교 집회를 열기 전인 17세기 초부터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을 통해 먼저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사회 경제적 변화와 함께 성리학적 가치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하여 새로운 사상 체계를 모색하는 시기였다.

이에 서학을 연구하려는 남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주학이 성행하였고 이어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중인에서 양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입교함으로써 천주교는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천주교의 가르침이 유교의 가치 질서를 파괴한다 하여 사학(邪學)으로 간주하고 박해하였다.

1831년(순조 31) 조선대목구가 설정되고, 1836년(헌종 2)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였지만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이주하여 교우촌이라 불리는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였다.

전라북도에도 일찍이 많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대부분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피난 온 신도들이었다. 이들은 일단 전라북도로 들어오는 통문인 고산[지금의 완주 지역]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짐으로써 박해 이후 전라북도의 교회는 고산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신도들은 두메산골에 묻혀서 화전을 일구고 잎담배를 재배하였으며,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교우들의 집회는 일반적으로 신도들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집회를 위해 별도의 건물을 지을 수 없을뿐더러 건물을 지을 재정적 능력도 없었다. 설령 건물을 지었다 해도 초라한 오두막이 고작이었다.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뒤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이 허용되자 선교사들은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하며 전교 활동을 하였고, 개항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토지를 매입하고 본당과 공소를 설립하였다. 본당의 설립은 교회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2. 개화기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한옥 성당

전라북도 최초의 성당은 1889년(고종 26) 봄에 세운 전주성당과 금구 배재성당이다. 1895년 완주 고산성당[되재성당]이 설립된 데 이어 1897년(고종 34) 익산 나바위성당이 설립되었고, 이어서 진안 어은동성당[1900], 정읍 신성리성당[1903], 김제 수류성당[1907], 익산 안대동성당[1909]이 설립되었다. 성당의 설립과 함께 신부가 배치되었고 성당 건물과 사제관 신축이 이루어졌다.

완주 고산성당은 1895년 프랑스인 비예모 신부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으로, 6·26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2009년 원래대로 복원하였다. 4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앞면 9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정면 중앙에 종루가 있고 종루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다.

내부는 전통 한옥의 종간과 횡간을 바꾸어 깊이를 둠으로써 바실리카 양식의 예배 공간을 마련하였다. 삼면에 퇴를 구성하여 툇마루를 시설하였고 뒤 툇간은 제의실이다. 내부는 중앙에 기둥을 세워 칸막이를 설치하여 남녀 자리를 구분하였다.

수류성당은 김제 금구 배재에 세워졌다가 라크루 신부가 부임하여 좀 더 넓은 곳을 찾아 지금의 수류로 옮겼다. 처음에는 기존의 재실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는데 ㄱ자형 한옥의 연결부에 제대를 마련하고 양쪽 날개에 남녀 신도석을 두었다.

1907년에는 건물이 좁고 낡아 새롭게 성당을 준공하였다. 앞면 4칸 옆면 12칸의 한옥 성당으로 좌우 툇간에 마루가 있고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다른 한옥 성당과 비슷한 구조였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 시기에 세워진 한옥 성당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사적 제318호로 지정된 화산천주교회가 유일하다. 1906년 준공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정면과 좌우 툇간이 마루로 되어 있고 정면 가운데 종탑과 십자가가 있는 이층 형식의 목조 기와 건물이다.

1916년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벽돌로 개수하였다. 이때 종탑을 증축하고 벽을 헐어 벽돌을 쌓았으며 툇간의 마루는 회랑으로 변형시켜 서양식 성당의 외관을 갖추었으나 내부의 모습은 커다란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성당 내부는 제대 부분과 회중석으로 구분되어 있다. 회중석은 다시 중앙에 기둥을 세우고 칸막이를 설치하여 남녀 신도석을 분리하였다. 구조는 1층의 내진주가 상층의 변주가 되는 중층 구조이다. 전통 한식 목조 구조이면서 바실리카 양식 교회의 공간적 특성을 잘 수용하고 있다.

[김제의 주요 성당]

1. 수류성당

수류성당(水流聖堂)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223번지[수류로 643]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1889년 봄 배재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 10월 성당을 이전하고 수류본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배재본당의 전신인 배재공소는 1882년 리우빌 신부가 설립하였다. 그 후 베르모렐 신부가 전라도 남쪽 지방 공소들의 판공성사를 돌보는 과정에서, 다른 공소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배재공소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 배재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2대 주임 조조 신부가 살해되고 3대 라크루 주임 신부가 부임하면서 면 소재지가 있는 수류로 성당을 이전하고 수류본당으로 개명하였다. 수류본당은 1895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라크루 초대 신부가 당시 금구 배재에서 1년간 전교에 힘쓰다가 1896년 현재의 사제관 터인 이 진사의 재실을 구입하여 창설하였다.

제2대 주임 신부인 페네가 성당 건축에 착수하여 1907년 한국의 고전적 건축 양식을 갖춘 구(舊) 성당을 준공하였다. 수류본당에서는 1908년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세워 전라북도에서는 최초로 한문과 신학문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때의 수류본당은 김제, 부안, 정읍, 순창, 고창, 담양, 장성까지 관할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50여 명의 신자가 죽고, 1907년에 세워진 수류본당 건물도 불에 탔다. 이리하여 1960년까지 10년 동안 수류 지역 신자는 김제본당에 소속되었다. 1959년 교우들의 노력으로 현대식 성당을 재건하여 전주교구 관하의 수류본당을 부흥, 재출발하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2. 요촌성당

요촌성당(堯村聖堂)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 172번지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김제 요촌 일대에 언제부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1920년 구장리공소 회장 김정엽이 검산리공소를 설립한 게 시작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검산리공소는 이후 신자수가 늘어나 수류본당의 뤼카 신부가 마련한 성당 부지에 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1935년 6월 16일 수류본당에서 김제본당으로 분리되었고, 초대 신부로 이상화 베르톨로메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본당 운영이 마비되기도 했으나, 1954년 현재의 본당 부지인 요촌리에 땅을 매입하고 1956년 검산리에서 요촌리로 이전하여 성당을 신축했다. 김제본당에서 신풍본당이 분리되면서 1985년 1월 김제본당은 요촌본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3. 원평성당

원평성당(元坪聖堂)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1-4번지[모악로 21]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1938년 원평공소가 설립되고, 1940년 공소 강당을 건립한 이후 교세가 확장되어 신자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중 사제관이 불에 탔으나 1960년 복구를 마치고 원평 지역 전교에 힘쓰기 시작했다. 1977년 12월 27일 수류본당에서 분리되어 원평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신부로 김태윤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후 성당신축위원회를 발족하고 성당 신축을 계획하여, 1982년 7월 5일 성당과 사제관 공사를 완공하고 김재덕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4. 신풍성당

신풍성당(新豊聖堂)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163-1번지에 소재하는 전주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김제성당[지금의 요촌성당]의 신자수가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이 지역에 새로운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1985년 1월 26일 김제본당에서 분리되어 김제읍 신풍리에 새로운 성당을 설립하기 위한 부지를 매입하였다. 하지만 이 곳 성당 부지에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매각하고 다시 현재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1983년 5월 성전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그 해 8월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신풍성당은 전주교구에서 한국 천주교회 창립 기념으로 건립한 4번째 성당으로, 초대 주임 신부는 강인찬 도미니코 신부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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