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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신명학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446
한자 金溝新明學校
영어공식명칭 Geumgu Sinmyeong School
이칭/별칭 신명학교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 65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윤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립 보통학교
설립연도/일시 1907년(순종 1)연표보기
폐교연도/일시 1910년(순종 4)연표보기
설립자 장태수(張泰秀)[1841~1910]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교육목표]

변해 가는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변천]

1907년(순종 1)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고향에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전라북도 금구군 서도면 상신리[현 금구면 서도리]에 교실 7칸짜리의 금구신명학교를 세우고, 학생 200여 명을 모아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사재를 털고 부족한 기금을 문중에서 어렵게 걷어 시작한 교육사업이었으나 금구신명학교는 1910년(순종 4) 한일합방 때 폐교되고 말았다. 1911년 금구신명학교의 후신으로 서도면 신명학교(新明學校)와 동도면 개성학교(開成學校)를 합쳐 학교 이름을 사립금구보통학교(私立金溝普通學校)라 정하였다.

동년 4월 1일 사립봉성학교 교원 송병희(宋炳熙)와 수류면 상옥리에 있던 사립인명학교 교원 정대선을 사립금구보통학교의 교원으로 임명하여 6월 16일 금구향교(金溝鄕校) 명륜당을 빌려 개교하였다. 같은 해 7월 20일 관용 건물인 봉성관(鳳城館)이라는 객사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12년 사립금구보통학교는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13년 3월 16일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같은 해 5월 1일 4년제 초등보통학교인 금구보통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학생 98명으로 2학급을 편성하여 개교하였다. 친일파 708인[2002년 발표]에 해당하는 최탁(崔卓)[1892~?]이 금구 출신으로 금구신명학교를 거쳐 1916년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나타난다.

[교육활동]

설립자 장태수는 변해 가는 시대에 적응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신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초빙해 일어·수학·한문을 가르쳤다. 특히 일어 교육을 통하여 배일사상을 기르게 하였는데, 단순한 감정적 소모에서 벗어나 적인 일본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여 구체적인 대응 방식을 갖추게 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영재들을 모아 배일 정신을 고취하는 민족 교육의 도장으로 시작된 금구신명학교는 근동에서 뿐만 아니라 정읍·부안·태인 등에서까지 학생들이 모여들어 두세 차례 교실을 증축하였으나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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