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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 도정공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575
한자 月鳳搗精工場
영어의미역 Wolbong Rice-polishing Mill
이칭/별칭 오오쓰미 도정공장,부용 도정공장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진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도정공장
양식 목조 건물|함석지붕
건립시기/일시 1945년 이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지도보기
소유자 이창렬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도정공장.

[개설]

오오쓰미[大隅] 도정공장 또는 부용 도정공장이라고 부르는 월봉 도정공장은 일본이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할 때 지어진 건물이다. 일제시대 김제 만경평야는 쌀과 돈이 넘쳐흘러 조선 식민지 침탈에 나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김제 지역에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근처에 항구를 만들었으며,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도정공장 등을 건설하고 금융 시설과 치안 시설까지 만들었다. 월봉 도정공장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하였다.

월봉 도정공장은 정부 양곡 도정공장의 역할을 하면서 인근에 있는 백산면 도정미까지 관할하며 연간 7만 가마니를 도정하였고, 직원은 무려 20명이 넘었다. 정미기 6대에 보리정맥기가 20대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컸다. 당시 김제 일대의 벼는 모두 월봉 도정공장에서 찧어 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으나, 1990년대 정부가 농협 RPC 사업을 시작하면서 민간 도정업이 급격히 쇠퇴하였다.

월봉 도정공장은 2000년도 초반까지 가동되었으나, 소매를 주로 하는 대형 슈퍼에 납품하는 40㎏짜리 쌀을 1년에 3,000가마니 정도 작업하는 데 그쳤다. 상호도 오오쓰미 도정공장·부용 도정공장·월봉 도정공장으로 불렸다.

[위치]

월봉 도정공장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김제 구 백구금융조합(金堤 舊 白鷗金融組合)에서 3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1945년 이전인 일제강점기 때 큐우슈우[九州] 시코쿠[四國] 출신 지주 오오쓰미[大隅]가 세웠다. 현재의 규모는 1946년 공장 증축과 1979년 철근 콘크리트조 창고 증축으로 확장된 것이다. 1963년 현재 주인인 이창렬이 월봉 도정공장을 인수하였고, 해방 후 신한공사에서 관리하던 것을 서울 출신 이일신이 매입하였다. 이후 이창렬이 다시 매입하였으며, 2000년도 초반까지 공장이 가동되었다.

[형태]

월봉 도정공장의 총 규모는 대지 4,136㎡, 건축 연면적 2,376㎡로 몸체는 목조, 지붕은 함석으로 되어 있다.

[현황]

2010년 현재 월봉 도정공장의 소유자는 이창렬이다.

[의의와 평가]

월봉 도정공장은 일제강점기 착취와 수탈로 얼룩졌던 우리의 근대사를 기억하게 해 준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인지라 그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무조건 청산하고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미래를 살아가는 후손들이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월봉 도정공장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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