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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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에 있는 함양 박씨 집성촌.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을 시조로 하고,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朴善)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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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경주 김씨(慶州 金氏)의 시조는 경주 서쪽 시림(始林)[계림(鷄林)]의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탈해왕으로부터 ‘김(金)’이라는 성을 하사받은 김알지(金閼智)[?~?]이다. 김알지의 후손들은 미추왕(味鄒王)을 시작으로 신라의 마지막 국왕인 경순왕(敬順王)에 이르기까지 모두 38명의 왕을 배출하며 왕족의 지위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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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계백(階伯)[?~660]은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름은 승(升)이고 성씨는 백제 왕실의 성씨와 같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계백’을 성씨로 보기도 한다. 계백의 조상은 개백현(皆伯縣)[현 경기도 고양시]을 근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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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부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부여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인 고포국(古蒲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는 증산리 유적에서 주구묘 14기가 확인되었으며, 가중리 유적에서 7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쌍북리 두시럭골 유적에서는 덧널무덤과 원형 수혈유구들이 조사되었고, 가탑리 유적에서는 널무덤과 독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탑리 가탑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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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음력 9월 9일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 구일차례에서 ‘구일’은 음력 9월 9일을 말한다. 9는 음양 사상에서 양(陽)의 수인 홀수 가운데 가장 큰 숫자이다. 9월 9일은 가장 큰 양의 수가 겹쳤으니, 중양절(重陽節), 중구일(重九日)이라 부르고 으뜸가는 명절로 친다.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이처럼 중양절에 햇곡으로 제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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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국지모(國智牟)[?~?]는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국씨 가문이다. 국씨는 국지모 이외에도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에 국변성(國辯成),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국사리(國沙利), 덕솔 국수다(國雖多), 국변성 등이 확인된다. 국변성이 의자왕이 당나라로 갈 때 대좌평 사택천복 등과 함께 끌려갔다는 기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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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에서 군장동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군장동(軍藏洞)」은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에서 백제군이 마지막까지 신라군에 저항한 군장동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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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 있는 김유신·김일손·김우항을 모신 사당. 규암 부풍사(窺岩 扶風祠)는 김해 김씨 김유신(金庾信)[595~673],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과 갑봉(甲峰) 김우항(金宇杭)[1649~1723]을 모신 사우이다. 김유신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신라 무장이다. 김일손은 주로 언관으로 재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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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재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부여에 세거하였던 기계 유씨는 유성복(兪成福)의 자손이다. 유성복의 후손 중 부여에 세거하였던 분파는 진사공파(進士公派) 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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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바위. 낙화암(落花岩)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다. 660년 7월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왕도 사비성(泗沘城)이 함락되고 백제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였다. 백제 왕궁에 있던 궁녀들은 적군에 항복하기보다 죽기로 마음먹고 부소산성의 북쪽 강변 바위에서 차례로 떨어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후대에 궁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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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538년부터 660년까지 사용된 백제의 별칭. 백제 성왕은 538년(성왕 16) 백제의 중흥을 위해 사비(泗沘)로 천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하였다. 남부여로의 개칭은 부여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천명한 것으로, 왕실 세력을 결집하고 이성 귀족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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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당나라에서 제30대 무왕과 제31대 의자왕, 부여융과 부여경에게 내린 명예직 벼슬. 대방군은 후한(後漢) 말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요동 지역의 패권자인 공손강(公孫康)이 낙랑군(樂浪郡)의 둔유현(屯有縣)을 비롯한 남쪽 7개 현을 따로 떼어내 설치하였던 이른바 외군(外郡)이다. 중심지인 대방현(帶方縣)의 관청이 지금의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에 있는 당토성(唐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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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에 따르면 웅주(熊州)에 속한 가림군(嘉林郡)에는 2개의 현(縣)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한산현(翰山縣)은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불렀다.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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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의 대조사와 미륵불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대조사와 미륵불」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있는 대조사(大鳥寺)의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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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의 대조사와 미륵불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대조사와 미륵불」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있는 대조사(大鳥寺)의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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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세거하는 동래 정씨 집성촌. 동래 정씨(東萊 鄭氏)는 신라 육촌장 가운데 한명인 취산진지촌장(觜山珍支村長) 지백호(智伯虎)의 원손(遠孫)인 안일호장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고려 초에 보윤을 지낸 정지원(鄭之源)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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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일대에서 맹괭이 방죽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맹괭이 방죽」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일대에서 맹괭이 방죽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이만광이라는 점쟁이가 소정방에게 의자왕(義慈王)이 있는 곳을 발설한 뒤로 독사에 물려 죽고, 집에도 물이 차 방죽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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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발견된 글을 적은 나뭇조각에 나타난 고대 부여인의 삶.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백제 목간은 2023년 현재 16개 유적에서 102점 125편이 출토되었다. 이는 전체 백제 목간의 거의 95%를 차지한다. 목간은 단편적 내용을 기록하여 정보량이 많지 않지만, 당대인이 기록한 자료로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같은 문헌에서는 전하지 않는 상세한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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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마다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었다. 이때 깃발을 걸어 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지탱하여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무량사당간지주(無量寺幢竿支柱)는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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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마다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었다. 이때 깃발을 걸어 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의 양쪽에 지탱하여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무량사당간지주(無量寺幢竿支柱)는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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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백제의 제30대 왕. 무왕(武王)[?~641]의 성은 부여(扶餘)이며, 이름은 부여장(扶餘璋)이다. 백제 제29대 왕인 법왕(法王)[재위 599~600]의 아들이며, 제30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금마(金馬)[현 전라북도 익산시]의 연못에 사는 용과 가난한 어머니 사이에서 무왕이 태어났으며,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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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의 문화 정책과 문화 예술인의 문화 예술 활동. 충청남도 부여군은 금강(錦江) 하류에 있어 예로부터 바다를 통하여 중국, 일본과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특히 부여 지역에 도읍한 백제는 일찍부터 중국 여러 왕조와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문화를 교류하였다. 활발한 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꽃피운 백제의 문화 예술을 일본에 전파하여 일본에서 아스카 문화가 번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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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 오천결사대의 넋을 위령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탑. 백제 오천결사대 충혼탑(百濟 五千決死隊 忠魂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의 궁남지 인근에 있는 기념탑이다. 나당 연합군의 협공을 받고 백제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황산벌로 나가 신라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장군 계백과 백제 오천결사대의 우국충절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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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향을 피우는 도구. 백제 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부여 왕릉원과 사비 외곽성 동성벽 사이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인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출토되었다. 앞발을 높게 올린 용 한 마리가 연꽃송이의 밑부분을 입으로 물고 하늘로 올라 갈 듯 고개를 쳐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연꽃송이의 중앙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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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부터 663년 동안 백제 유민들이 멸망한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던 운동. 백제 의자왕이 항복을 하자 나당 연합군은 왕도 사비도성과 북방의 웅진성을 점령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백제 고토를 지배하려 하였다. 나당 연합군은 사비도성에 들어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였으며, 특히 항복한 의자왕에게 굴욕을 강요하는 등 온갖 행패를 자행하였다. 격분한 백제 유민들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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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538년 사비 천도 이후 660년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도성.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면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는데, 점차 국력을 회복함에 따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음[更而强國]”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웅진도성은 급하게 천도하면서 너무 협소한 지리적 여건 등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사비도성은 국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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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해마다 음력 2월에 전쟁에서 사망한 원혼을 위로하고자 지내는 별신제. 별신제[별신굿]는 2~3년 혹은 10년 주기로 개최하는 ‘대제(大祭)’나 ‘큰굿’을 일컫는다. 마을에서 따라서는 필요할 때 특별히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서해안 및 내륙 지역은 매우 희소한 편이다. 충청남도에서는 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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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귀족. 복신(福信)[?~?]의 성은 귀실(鬼室)이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조카이자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의 사촌동생으로 전한다.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권26 제명기(齊明紀) 6년 조에 기록된 ‘귀실복신(鬼室福信)’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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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부산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부산 이야기」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는 부산(浮山)에 얽힌 이야기이다. 부산은 신라에서 떠내려와 부여에 자리 잡았다고도 전하고, 청주에서 떠내려오다 부여에서 멈추었다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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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당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념하는 백제 시대 비석. 부여 당 유인원 기공비(扶餘 唐 劉仁願 紀功碑)는 당과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때 당군의 일원으로 전공을 세운 당 장수 유인원(劉仁願)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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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 부여 석성산성은 현내리 서쪽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한 3중 석축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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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는 수령 1,500년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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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에 속하는 법정군. 부여군(扶餘郡)은 동쪽에 논산, 서쪽에 서천과 보령, 남쪽은 금강, 북쪽은 공주, 청양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행정 구역은 1읍, 15면, 437개 행정리[191개 법정리]가 있다. 부여군청은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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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지명. 선사 시대부터 대규모 청동기 마을을 형성한 정치 세력이 자리 잡았고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소국이 있었으며, 4세기 중엽에 백제 영토로 편입된 뒤 538년부터 백제의 새로운 왕도(王都)로 개발되어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 시대의 이름은 소부리(所夫里), 사비(泗沘)였으며, 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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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서동공원 일대에서 매년 7월 개최하는 연꽃 축제. 부여서동연꽃축제(扶餘薯童蓮꽃祝祭)는 부여군이 주최하고 부여문화원이 주관하여 부여 서동공원 일대에서 매년 7월 개최하는 연꽃 축제이다. 부여 서동공원은 백제 무왕 때 인공 축조한 궁남지를 중심으로 조성한 공원이다. ‘서동’이란 명칭은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의 이름에서 따왔다. 서동공원의 중심에 있는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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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부여융(扶餘隆)[615~682]의 이름과 자는 모두 ‘융(隆)’이다. 할아버지는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이고, 아버지는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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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7세기 중엽 백제의 왕자로서 의자왕 때 사비에서 왜(倭)로 건너가 활동하였으며, 성은 부여씨(扶餘氏)이고, 이름은 풍(豊) 또는 풍장(豊璋)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부흥운동군의 요청에 따라 661년경 백제로 돌아와 왕이 되었으며, 663년 백강구전투(白江口戰鬪)에서 백제와 왜 연합군이 신라와 당 연합군에게 전멸당하자 고구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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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으로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와 같은 백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택리지』에서는 부여의 지역적 특징으로 경치가 매우 훌륭하며, 땅이 기름져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도읍으로는 지대가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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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서 서식하는 수릿과의 여름 철새. 수릿과의 맹금류에 속하는 붉은배새매는 중국, 대만, 일본 등에 드물게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광릉 일대를 비롯한 중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서 발견되는 여름 철새이며, 매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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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수. 사걸(沙乞)[?~?]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이자 사비기에 왕비족(王妃族)으로 급부상한 유력한 귀족 가문인 사씨(沙氏) 출신이다. 사씨는 정치적 기반이 사비 지역이었는데, 538년(성왕 16) 사비 천도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무왕 재위 초기에 사씨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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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 왕도 지명. 사비(泗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연원하며, 성왕이 538년(성왕 16)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함으로써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사비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가 사비도성에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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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13일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략하여 함락한 사건. 백제는 의자왕 대에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의자왕 2년인 642년 7월에는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았으며, 8월에는 대야성을 공략하여 함락하고, 성주 품석과 품석의 아내와 자식을 베었다. 648년에는 요거성 등 10여 성을 차지하였고, 649년에는 석토성 등 7개 성을 공략하였다. 의자왕은 신라를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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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석가모니의 탄생일에 지내는 풍습. 사월 초파일은 음력 4월 8일이니 줄여서 초파일로 부르기도 하고,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니 석가탄신일, 불탄일, 석탄절, 부처님오신날 등으로도 불린다. 충청남도 부여군의 불교계에서는 사월 초파일을 1년 중 가장 큰 기념일로 여겨 부처의 탄생을 경축하고 연등 행사나 관등놀이를 행한다. 불교 신자들 또한 이날 자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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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를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무왕의 왕비. 사택왕후(沙宅王后)[?~?]는 백제 제30대 무왕의 비이다.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씨 가문으로,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다. 사택왕후의 사택씨(沙宅氏)는 사탁씨(沙矺氏) 또는 사탁씨(沙乇氏)라고도 불리며, 단일성으로 표기할 때는 사씨(沙氏)이다. 『수서(隋書)』「백제전」에서 백제의 유력한 여덟 가문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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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 3충신을 모신 사당. 삼충사(三忠祠)는 백제의 3충신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그리고 계백(階伯)을 모신 사당이다. 656년(의자왕 16) 백제 좌평이었던 성충은 국가가 위태로움에 처하였음을 알고 의자왕에게 간언하다 투옥되었다. 옥중에서 죽음에 임박하자 당과 신라를 막을 수 있는 방책을 의자왕에게 바쳤으나 의자왕은 성충의 계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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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상영(常永)[?~?]은 백제 사비 도읍기인 의자왕 대 중앙 부서에서 활동한 고위 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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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공원. 서동공원(薯童公園) 중심에는 1964년 6월 10일 사적으로 지정된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가 있다. 부여 궁남지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며, 일본의 정원에 영향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부여 궁남지는 신라 선화 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연못이며, 보존 가치가 높아 관광객 유치와 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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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에 있는 드라마 세트장. 서동요 세트장은 백제 무왕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극화한 한국 최초의 백제 역사 SBS 드라마 「서동요」 오픈세트장이다. 2005년 60억 원을 들여 3만 3000㎡[약 1만 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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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석성현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지역에 설치되었다. 석성현은 백제 때 진악산현(珍惡山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석산현(石山縣)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부여군의 속현이었다. 고려 초 940년 석성현(石城縣)으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부터 공주에 예속되었다. 1172년(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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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음력으로 1월 1일에 행하는 세시풍속.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설은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첫째 날을 말한다. 예부터 이날은 새해를 여는 날이기에 명절로 삼고 기념하였다. 설은 원단(元旦), 원일(元日), 정조(正朝), 원정(元正), 세수(歲首), 신일(愼日)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별칭 대부분이 새해의 첫째 날 또는 으뜸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다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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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6대 왕. 성왕(聖王)[?~554]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명농(扶餘明穠) 또는 부여명(扶餘明)이다.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재위 501~523]의 아들이며, 제27대 위덕왕(威德王)[재위 554~598]과 제28대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아버지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성왕·명왕(明王)·성명왕(聖明王)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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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의 부여 성흥산성과 일곱 명의 왕자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성흥산성과 7왕자」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의 부여 성흥산성(扶餘 聖興山城)[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의 성주였던 윤충(允忠)과 백제 의자왕(義慈王)의 일곱 왕자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성흥산성과 7왕자」는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던 성흥산성에서 윤충이 일곱 왕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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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의 성은 중국의 한자 문화를 수용하면서부터 시작되어, 초기에는 왕족이나 일부 귀족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신라 통일 이후 일부 공신 집단에 대해 임금이 성을 내려 주다가 남북국 시대의 지방 호족들이 성씨를 취득하였다. 고려 태조(太祖)는 호족을 포섭하려고 해당 고을에 대한 우월적 지배권을 인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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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왕도와 관련된 역사 유적. 부여(扶餘)는 삼국 시대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다. 백제는 538년(성왕 16)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부여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비 천도는 계획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비왕도는 도성제(都城制)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조영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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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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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백제 사비도성에서 건물과 유물에서 구현되었던 신선 세계. 백제 사비도성에는 아침저녁으로 신인(神人)이 서로 왕래하였다는 세 개의 산[삼산]이 있었다. 신인은 신선이면서 산신이기도 하다. 신인 즉 신선이 사는 곳은 인간 세계가 아닌 선경으로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백제인은 신선이 사비도성을 선경으로 변모시키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삼산뿐만 아니라 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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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역사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 부여 지역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하였는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부여 지역에서는 외산면과 홍산면의 지표 조사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물이 수습되었다. 외산면 반교리에서는 몸돌 1점이, 홍산면 좌홍리에서는 양날찍개 1점이 수습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은산면과 규암면에 신석기 관련 유적이 수습되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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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연문진(燕文進)[?~?]은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연씨(燕氏) 가문이다. 연씨는 웅진 천도 이후에 등장한 신진 세력이었으나, 478년(삼근왕 2) 연신이 해구의 반란에 연루되어 중앙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497년(동성왕 19) 연돌이 병관좌평에 임명되면서 유력한 귀족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연씨 세력의 재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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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리. 예군(禰軍)[613~678]의 성은 예씨(禰氏)이고, 자는 온(溫)이다. 웅진(熊津) 우이(嵎夷)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복(禰福), 할아버지는 예예(禰譽)이며, 아버지는 예선(禰善)이다. 모두 백제의 제1품 좌평(佐平)을 지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에는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신라본기 문무왕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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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11월 5일부터 7일간 왕흥사잠성에서 백제부흥군이 신라군과 벌인 전투. 660년 7월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 의례를 행한 이후 백제 고지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다. 9월 3일 소정방이 의자왕을 비롯하여 백제 왕족 및 백성들을 데리고 당으로 귀국하면서, 사비성에는 유인원과 군사 1만을 남겨 지키도록 하였다. 이에 백제부흥군은 사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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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웅진도독부 소속 지방 행정 구역. 우이(嵎夷)는 고대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 이민족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는데, 당(唐)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 진격로의 이름을 ‘우이도(嵎夷道)’라 하였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13개 현(縣)을 설치할 때 백제왕도 사비 지역에 설치한 현을 우이현(嵎夷縣)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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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삼국 시대 당이 설치한 군정 기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한 후 당나라는 백제 고토에 대한 직접 지배를 위하여 통치 기구를 설치하였다. 본래 5도독부를 두려고 하였으나 백제의 격렬한 부흥 운동의 전개로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로 단일화하였다.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함으로써 실질적인 기능은 정지되었으나 웅진도독부가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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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7대 왕. 위덕왕(威德王)[?~598]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창(扶餘昌)이다. 백제 제26대 왕인 성왕[재위 523~554]의 아들이고, 제28대 혜왕(惠王)[재위 598~599]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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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임천 유태사 묘에 위패가 봉안된 고려 전기 무신. 유금필(庾黔弼)[?~941]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평산 유씨(平山 庾氏)와 무송 유씨(茂松 庾氏)의 시조이다. 아들은 유긍(庾兢)·유관(庾官)·유유(庾儒)·유경(庾慶)이며, 딸은 태조 왕건의 제9비인 동양원부인(東陽院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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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장군. 윤충(允忠)[?~?]은 장군의 직책으로 부여에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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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고위 관료이자 장군. 은상(殷相)[?~?]은 649년 백제의 좌장(左將)으로서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도살성(道薩城)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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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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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31대 왕. 의자왕(義慈王)[?~660]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이다.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재위 600~641]의 맏아들이며, 부여융(扶餘隆)[615~682]·부여효(扶餘孝)·부여풍(扶餘豊) 등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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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관료이자 장군. 의직(義直)[?~?]은 백제 사비 도읍기에 중앙군의 장군으로 활동하였으나 성씨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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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행정 구역. 석성현은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위치한 행정 구역이었고, 이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군현이었다. 두 군현은 백제 때부터 다른 영역으로 설정되어 각기 다른 행정 영역을 이루고 있었는데, 1414년(태종 14) 전국 지방 군현의 통폐합 과정에서 통합 대상이 되어 이산현의 이(尼) 자와 석성현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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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 행정 구역. 임천 지역은 통일 신라 이래로 가림군(嘉林郡)이라 불리다가 고려 시대인 995년(성종 14)에 임주(林州)로 개편되면서 자사(刺史)가 설치되었다. ‘임주’라는 명칭이 995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 후 1018년(현종 9)에 다시 가림현으로 바뀌었고, 1315년(충숙왕 2)에 지임주사(知林州事)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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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원찰. 사적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는 부소산 서북쪽 백마강 건너편 울성산성 남쪽, 일명 왕안마을 일대에 있다. 백제 사비 도읍기의 대표적인 가람 터이다. 1934년 ‘王興(왕흥)’ 글자가 새겨진 고려 시대 기와와 석조불좌상, 토기 등이 발견되어 백제 왕흥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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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원찰. 사적 부여 왕흥사지(扶餘 王興寺址)는 부소산 서북쪽 백마강 건너편 울성산성 남쪽, 일명 왕안마을 일대에 있다. 백제 사비 도읍기의 대표적인 가람 터이다. 1934년 ‘王興(왕흥)’ 글자가 새겨진 고려 시대 기와와 석조불좌상, 토기 등이 발견되어 백제 왕흥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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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날이 몹시 가물 때 비를 기원하며 시장을 옮기던 풍속. 새로 길을 내는 것을 ‘길내기’라고 하듯이, 장내기(場내기)는 새로운 장을 낸다는 뜻이다.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는 가뭄이 지속될 때 시장을 옮기는 ‘장내기’라는 주술적인 행위를 통하여 비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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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전하는 백제 멸망기 백제인의 저항 의식을 담은 구비 문학. 패망한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유형의 설화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백제 패망의 과정에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거나 방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백제 수호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또 한 가지는 백제 유민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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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전하는 백제 멸망기 백제인의 저항 의식을 담은 구비 문학. 패망한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유형의 설화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백제 패망의 과정에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거나 방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백제 수호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또 한 가지는 백제 유민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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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왕실 사찰 터. 부여 능산리 사지(扶餘 陵山里寺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의 부여 왕릉원 서쪽 가까이에 있다. 부여 능산리 사지는 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을 둘러싼 외곽성인 부여 나성의 동쪽에 인접하여 있기 때문에 부여 사비 시대의 외곽성을 벗어난 바로 바깥에 있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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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백제 8충신 등을 모신 사당. 충화 팔충사(忠化 八忠祠)는 백제 말의 8충신과 황산벌에서 전몰한 오천결사대를 모신 사당이다. 팔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의 3충신과 복신(福信), 도침(道琛), 혜오화상(慧悟和尙), 곡나진수(谷那晉首), 억례복류(憶禮福留)을 말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은 8충신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팔충골’로 불리며, 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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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백제 8충신 등을 모신 사당. 충화 팔충사(忠化 八忠祠)는 백제 말의 8충신과 황산벌에서 전몰한 오천결사대를 모신 사당이다. 팔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의 3충신과 복신(福信), 도침(道琛), 혜오화상(慧悟和尙), 곡나진수(谷那晉首), 억례복류(憶禮福留)을 말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은 8충신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팔충골’로 불리며, 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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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의 파진산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파진산 이야기」는 은산당산성(恩山 堂山城) 앞산인 파진산(破陣山)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백제군이 당나라군에게 패한 당산성 앞산이라 하여 ‘파진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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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진을 시조로 하고 순한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순씨(荀氏)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 순후(荀侯)에 책봉되면서 후손들이 성을 순씨로 하였다고 전한다. 순자(荀子)로 불리는 순황(荀況)의 후예 순자안(荀自安)이 신라로 건너와 우복야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후의 계보는 알 수 없다. 순씨는 홍산(鴻山) 외에 임천(林川)·창원(昌原)·연곡(連谷) 등의 본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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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화암사에 있는 고려 전기 오층석탑. 화성리오층석탑(花城里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화암사 경내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원래 탑 주변에서 기와 조각과 탑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화암사 창건 후 흩어져 있던 탑 조각을 모아 복원하였다. 주변에 지붕돌이 하나 남아 있어 원래는 오층석탑으로 추정된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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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화암사에 있는 고려 전기 오층석탑. 화성리오층석탑(花城里五層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화암사 경내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원래 탑 주변에서 기와 조각과 탑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화암사 창건 후 흩어져 있던 탑 조각을 모아 복원하였다. 주변에 지붕돌이 하나 남아 있어 원래는 오층석탑으로 추정된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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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의열사와 삼충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백제 말기의 충신. 흥수(興首)[?~?]는 백제 의자왕 때 제1품 좌평을 지낸 충신이다. 사비의 중앙 부서에서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수는 위기를 맞은 의자왕이 귀양지로 사람을 보내 의견을 구한 만큼, 의자왕 즉위 초 왕권 강화를 위하여 성충(成忠)과 함께 적극 노력한 인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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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일대에서 희어대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희어대 전설」에서 ‘희어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의 ‘희어티’라는 지명이 굴절되어 전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희어티’는 지질학적 특성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보이는데, 구비 전승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희어대’라는 지명으로 전한다. 「희어대 전설」은 ‘희어대’라는 지명에 대하여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