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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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判同 |
영어공식명칭 | Jeong Pand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판동(鄭判同)[1894~1925]은 1894년 10월 3일 충청남도 서산시 남면 몽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무쇠점마을에 있던 박용화(朴容和)의 집에서 부여 지역 내 전·현직 천도교 간부였던 황우경(黃宇京)·박성요(朴性堯)·황금채(黃金彩)·최용철(崔容澈)·문재동(文載東) 등과 함께 합숙하며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정판동 등은 3월 6일 새벽에 팔충리를 출발하여 오전 7시 무렵 임천면 구교리에 도착한 뒤 곳곳에 「독립선언서」를 붙이고 장터 등 인파가 많은 곳에서 3·1 운동의 정당성과 시위 동참을 호소하는 연설을 하였다. 오전 10시 무렵 시위 군중이 불어나자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와 보통학교 등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임천 헌병출장소 앞에서도 만세 시위를 이어 가다가 정판동은 시위를 주도하였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정판동은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 60도형을 선고받았다. 정판동은 1925년 10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판동의 공적을 기려 201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