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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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無形遺産 |
영어의미역 | Formless Inheritanc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형체가 없이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고 있는 문화유산.
[개설]
창원 지역에서 무형으로 전승되고 있는 문화유산들은 들과 바다를 무대로 생활해 온 창원 지역 사람들의 질박한 생활상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정된 문화재로는 문창제 놀이[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5호], 마산 농청 놀이[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 불모산 영산재[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22호] 등이 있다. 비지정 유산으로 창원 오광대, 퇴촌 농악, 마산 성신대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창원 지역에는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고 있는 진동 큰줄다리기와 낙화 놀이, 사월 초파일 사화 마을 앞에서 벌어졌던 낙화 놀이, 안민 고개·적현 고개·남산 등지에서 벌어졌던 만날제[상봉제], 칠월 백중에 벌어졌던 머슴들 대회와 호미씻기, 백중물맞기 등이 있다.
[연희]
창원 지역의 무형 문화재로서 전문 놀이꾼들에 의해서 연희되는 대표적인 것으로 문창제 놀이와 마산 농청 놀이, 불모산 영산재, 창원 오광대 놀이가 있다.
문창제 놀이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행해지고 있다. 이는 병자호란 때 창원 대도호 부사 백선남과 함께 남한 산성으로 출정하는 도중 청나라 군사를 만나 죽음을 당한 황시헌(黃是憲)의 혼을 달래는 진혼을 겸한 제향에서 출발하였다. 놀이의 기본 구조는 당시의 사회 이념을 대변하는 유교 의례와 무속이 혼합된 형태로 관민(官民)이 어우러진 축제 행사였음을 보여 준다.
마산 농청 놀이는 창원 지역의 오래된 유속인 ‘두레’의 유흥에서 비롯한다. 놀이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일을 기해 각 두레를 대표하는 농기(農旗)를 앞세우고 반룡산의 상투 바위를 먼저 차지하여 축원하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형식은 두레와 두레 간에 서로 깃발을 넘어뜨리는 시합으로 전개되며, 이긴 편은 상투 바위 정상에 깃대를 꽂고 바위 앞에 제물을 차리고 축원한다. 그리고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술을 나누어 마시며 판굿을 벌여 서로 화합하는 것이다.
불모산 영산재는 불모산 일대의 사찰을 중심으로 행해져 온 의식으로, 범패와 그 범패에 맞추어 행해지는 작법[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으로 구성된다. 영산재는 석가모니불이 영산에서 행한 설법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오늘에 재현한다는 의미를 지닌 법회로, 쌍계사 주석의 진감(眞鑑)[774~850]이 행한 범패에서 비롯한다. 이는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여러 갈래를 보여, 크게 서울과 경기를 중심으로 하는 윗녘 소리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는 아랫녘 소리로 나뉘는데 불모산 영산재는 후자에 해당한다.
창원 오광대의 연희 장소는 창원장과 상남장 등지의 장터로 알려져 있다. 전체는 7과장으로 구성된다. 오방 신장 무과장, 상좌 노장 과장, 문둥이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 영감 과장, 사자무 과장 등이다. 퇴촌 농악은 퇴촌동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전통 놀이의 한 형태로 지금도 연희되고 있는 창원 지역의 대표적 농악놀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마산 성신대제는 오랜 기간 조사와 연구를 통해 발굴한 전통 축제 성격의 민속놀이다. 어시장 객주에 의한 시장제로 부흥되어 시민의 축제가 되었으나 현재는 기제 형식으로 3월 28일 제례만 지내오고 있다. 성신대제 보존회에서 발굴 계승한 내용에는 별신굿이 포함되고 있으며, 굿이 끝나면 기다리던 풍물패가 풍물을 치고 어울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놀이]
창원 지역의 공동체 놀이로 오늘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퇴촌 농악이 있다. 이는 퇴촌동 당산나무 주변에서 행해지던 농악 놀이가 전승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예로부터 퇴촌 마을에는 당산제를 지내왔는데 제를 지내기에 앞서 풍물을 먼저 하고, 또 제가 끝나면 가가호호 지신밟기를 하고, 다시 당산나무 주변에서 풍물을 치며 놀이를 한 데서 유래한다.
놀이는 들어가며 당산나무 앞에 자리할 때 하는 길굿, 당산나무를 둘러싸고 안으로 나무를 향해 인사하고 사방으로 인사하는 인사굿, 단기를 중앙에 위치시키고 단기를 중심으로 도는 당산굿, 뒤이어 춤추고 놀며 하는 살풀이굿, 자진모리로 원을 그리며 도는 선잽이굿, 상쇠를 중심으로 사방에 4개의 원을 그리며 멍석말이와 함께 노는 사방오토굿과 탈진놀이, 두 줄로 만들어 마주 보며 왔다 갔다 하는 미지기, 한 줄로 원을 만들어 휘몰이로 도는 강강술래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 외에도 호호굿, 농사짓기, 날당산굿 등을 하며 논다. 현재의 놀이는 1991년 3월 창립된 창원 퇴촌 농악 보존회를 중심으로 계승되고 있다.
진동면의 낙화 놀이는 근거가 명확치는 않으나 그 기원이 1,000년 전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음력 사월 초파일이면 진동 청년회에서 주관한 놀이로 일제 말기에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 부활하였으나 점차 그 규모가 작아지다가 창원 진동의 명물인 미더덕을 소개하는 축제와 함께 ‘진동 불꽃 낙화와 미더덕 축제’라는 명칭으로 동시에 행해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다시 독자적인 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사실 낙화 놀이는 지금은 공단 조성으로 사라진 사화동 마을 풍속으로 사월 초파일 저녁 무렵에 사화 방죽에서도 행해졌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 낙화를 제작하는 자세한 방법과 놀이 등이 발굴되고 있다.
진동 큰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줄다리기로 마을 사람들은 이 놀이를 통해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였다. 삼국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질 만큼 연원이 오래된 놀이로 일제 강점기에 중단되었던 것을 1965년 음력 정월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을 만드는 방법은 국내에서는 동일하게 만드는 곳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창원 지역에는 많은 놀이들이 행해졌다. 그 중에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 중에 북면 외감리와 자여 마을의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는 수백 년 이상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이들 마을의 줄다리기는 보름날 마을 당산나무에 동제(洞祭)를 지내고 난 뒤 마을 회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풍물을 치면서 대동제의 형식으로 오늘에 전승되고 있다.
그 외에도 전통 시대의 다양한 놀이 문화가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대부분이 사라져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