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학교
-
1880년대 한국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은 평양과 서울, 제물포(인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 비해 영남 지역의 복음 전파는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다. 영남 지역을 책임지고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오늘의 부산·경남 지역(밀양 제외)을 1899년 10월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 이양하고, 대구·경북 지역 담당 북장로교 선교지부를 경상감영이 있었던 대구로 옮겼다....
-
1919년 3·1운동 시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구미 지역의 3·1운동은 3월 12일 진평동에서 시작되어 약 한 달 동안 전개되었다. 진평동 독립만세운동은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4차례에 걸쳐 적게는 20~30명에서부터 많게는 2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체포되어 6개월 이상 감옥 생활을 한 인사만도 25명이나 되었다. 또 4월 3일 해평면에서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경보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이상백 등과 함께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져와 마을의 유지 이상백 등에게 전달하였는데, 권경보는 이상백 의 만세 운동 권유를 받아들여 거사일을 3월 12일로 정하고, 3월 11일에 이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영해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이상백 등과 함께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약 20매를 가지고 진평동에 사는 이상백(李相柏)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권영해는 이상백의 권유를 받고 이범성(李範成)·이내성(李乃成)·이영래(李榮來)·임점석(林點...
-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 때 선산군·인동군으로 설립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산군은 선산면과 고아면으로 분리되고,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해방 후 1963년 선산군의 구미면이 구미읍으로 승격되었고, 1978년에는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하여 구미시로 승격하면서 선산면에서 분리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도길(金道吉)은 1919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진평동의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져와 마을 유지 이상백(李相柏)과 상의하면서 추진되었다. 이상백과 김도길 등은 3월 12일 오후 8시 200여 명의 주민들을 규...
-
1919년 6월 최재화가 주동이 되어 경상북도 청년들을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보낸 사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은 새로운 투쟁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해평 산양리의 최재화(崔載華, 1892~1962)는 1919년 4월 2일 밤 동민들을 이끌고 고향인 해평경찰서(海平警察署)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였다. 또한 대구로 나가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김수길(金...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근술(朴根述)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인동면 진평동에서의 만세 운동은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선언서 20매를 이 마을의 유지 이상백에게 전달하면서 추진되었다. 이들은 거사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명언(朴明彦)은 1919년 칠곡군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柏)을 중심으로 이영식(李永植)·이내성(李乃成)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7일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을 찾아와 동지를 모이게 하여 상의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박명언은 마을에 독립...
-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종교인. 박태희는 옥계교회를 설립한 박용하의 12남매 자녀 중 여덟째(아들로는 셋째)로 태어났다. 처는 박태희보다 7살 아래로 옥계교회에서 분가해 나간 성전교회의 신자였으며 장모가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녔을 만큼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 형제 중 맏아들과 차남이 옥계교회의 장립집사이고 셋째 아들이 서리집사이며, 맏사위가 상모교회 장로이고, 막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에서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에서도 만세 시위를 결의하였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든 뒤 거사 당일 오...
-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구미 선산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선산에서는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3일 만세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4월 12일 권오환(權五煥)을 중심으로 선산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성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서 이만우(李晩雨)로도 불렸다. 1892년 4월 l일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543번지에서 이성률(李成律)의 5남으로 태어났다. 이만우는 17세 때 계성학교를 중퇴하고 동향 동지인 장진홍(張鎭弘)과 함께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고 제대 후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여 독립 투쟁을 시...
-
일제강점기의 경상북도 구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백(李相栢)은 1919년 3월 12일 인동면(仁同面) 진평동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인동교회의 목사로서 대구 서문외(西門外) 시장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3월 7일 이곳에 온 대구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만나 독립선언서 20매를 전해받고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상백은 자기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은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면 진평동에 있는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동리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만든 뒤 거사 당일 오후 8...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의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임용의 자는 종식(鍾植), 호는 월호(月湖)이다. 아버지는 이희원(李希元)이다. 이임용은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칠곡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대구 동산병원으로 직장을 옮겨 4년간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장날을 기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김수길·이영식·이영옥·김삼도 등과 함께 시장...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진평동의 애국지사들은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임삼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
-
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의 출신지인 구미시 임은동은 항일의 기풍이 강한 곳으로, 1919년 4월 8일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점석은 진평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진평동의 만세 시위를 결의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기미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이범성, 이내성(李乃成)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여기에 마을 유지들이 동참하여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필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주서는 1919년 3월 12일과 3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이상백(李相柏)을 비롯한 주민 3백여 명과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의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자, 이상백(李相栢)·이범성·이내성·이영래 등이 적극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0년 조선이 일제에 강점될 때 이상백(李相栢)·이범성·이내성 등은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살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의 계성학교 학생이던 이영식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상백(李相栢)의 집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자, 이상백(李相栢)·이범성·이내성·이영래 등이 적극적으로 찬동하였다. 동리의 유...
-
1919년 3월 12일과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진평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인동 진평동에서는 3월 12일과 14일 두 번에 걸쳐 학생과 지역 유지들이 결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를 시발로 비안·김천·포항을 거쳐 안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