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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212
한자 尹根壽
영어음역 Yun Geunsu
이칭/별칭 자고(子固),월정(月汀),문정(文貞),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공신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성별
생년 1537년연표보기
몰년 1616년연표보기
본관 해평
대표관직 판의금부사

[정의]

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용 윤희림(尹希林), 아버지는 군자감정 윤변(尹忭),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이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활동사항]

윤근수는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하여 주서, 주부 등을 거쳐 교검, 병조좌랑, 이조좌랑, 지제교, 교리 등을 지내고 1567년 사가독서를 했다. 1572년(선조 5) 동부승지를 거쳐 대사성에 오르고 다음해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明)에 다녀온 후 부제학,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강릉부사, 개성부유수, 황해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공조참판으로 성절사(聖節使)의 임무를 띠고 명에 다녀왔다. 형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이조판서를 지냈다. 이듬해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져 우찬성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판서로서 선조를 호종하였고 지경연사·양관대제학·지춘추관사·성균관사 등을 겸임했으며, 문안사(問安使)·원접사(遠接使)·주청사(奏請使) 등으로 명과의 외교를 담당하여 국난 극복에 힘썼다. 그 후 좌찬성이 되어 판의금부사를 겸임하였다. 윤근수는 성품이 청렴하고 겸손하였으며 성리학에도 밝았다. 또 문장이 고아하며 필법이 힘이 넘쳐 예원(藝苑)의 종장(宗匠)이라 일컬어졌다 한다. 저서로 『사서토석(四書吐釋)』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光國功臣) 1등에,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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