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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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芝秀 |
영어음역 | Sin Jisu |
이칭/별칭 | 영삼(靈三·英三),모양(慕陽)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영삼(靈三·英三), 호는 모양(慕陽).
[활동 사항]
신지수(申芝秀)[1854~1904]는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제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특히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이 붕괴되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영월에서 출범할 때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신지수가 제천 인근 지역에서 모아 온 병력이 중요 부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후 중요한 전투 부대인 후군을 책임지는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몫을 했다. 충주성을 공략할 때 청풍 쪽을 우회하여 측면 공격을 맡았고, 제천으로 물러선 이후에는 주로 강령 지역에 주둔하면서 가흥의 일본군 병참을 공격하는 ‘가흥 공격 작전’을 이끄는 등 적극적인 투쟁을 벌였다.
제천 의병이 제천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도 재탈환을 위한 작전에 앞장섰으며, 제천 인근에서의 재기에 실패한 후 많은 동지들이 서북 지방을 향하여 이동할 때 유인석보다 앞장서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도움을 청하러 선양[瀋陽]에 가기도 하였다. 뒤에 개화 정부에 의해 충청도 어사로 임명된 일이 있었는데, 이 일에 대해 유인석에게 질책을 받고 사죄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