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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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幕里- |
영어음역 | Dongmak-ri Teotgore Eokhin Iyagi |
영어의미역 | The Story about Teotgol in Dongmak-ri |
이칭/별칭 | 「동막리 텃골」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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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관련 지명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 |
성격 | 전설|풍수담|홍수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전주 이씨|여인|훈장 |
모티프 유형 | 지리박사가 된 전주 이씨|하관의 시를 어긴 아들|전주 이씨의 예언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에서 텃골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동막리 텃골에 얽힌 이야기」는 금성면 동막리에 있는 텃골마을에서 여우의 구슬을 삼켜 지리박사(地理博士)가 된 전주 이씨의 장례에 아들 형제가 하관의 시를 어겨서 집안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나오지를 못했다는 풍수담이다. 또한 홍수와 산사태의 발생을 예견하고 마을 사람들을 구했다는 홍수설화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는 「동막리 텃골」이라고 되어 있다.
[내용]
금성면 동막리에 있는 텃골마을이 형성될 무렵 전주 이씨가 살고 있었다. 이씨는 어려서 텃골 고개를 넘어 글방에 다녔다. 나무만 빽빽이 우거졌을 뿐, 인가 한 채 없는 쓸쓸한 고갯길을 혼자서 넘어 다녔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고갯길을 넘는데, 어제만 해도 보이지 않던 기와집이 한 옆에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어린 이씨가 그 앞을 주춤주춤 지나려는데 대문이 열리면서 아리따운 여인이 나와 어린 이씨를 청해 들이는 것이었다. 어린 이씨는 어떤 힘에 이끌리기라도 하듯이 여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어린 이씨를 방으로 안내하고 나가 버렸다.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방안에서 어린 이씨는 우두커니 앉아 사람 오기만을 기다리며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이 들어 그 집을 빠져 나와 급히 글방으로 달려갔다.
글방 훈장은 늦은 연유를 물었고, 어린 이씨는 사유를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것을 들은 글방 훈장은 어린 이씨에게 “그 여인이 언젠가는 다시 나타나 같이 살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 여인의 입에 있는 구슬을 달라고 해라.”라고 시켰다. 과연 며칠 후 텃골 고개를 넘으려는데 기와집과 그 여인이 다시 나타났다. 어린 이씨는 훈장의 말에 따라 입 속에 있는 구슬을 달라고 하였다. 여인은 아무 망설임 없이 어린 이씨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더니 입 속에 든 구슬을 어린 이씨의 입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어린 이씨는 입 속으로 들어온 구슬을 꿀꺽 삼켜 버렸다. 그랬더니 그 여인이 갑자기 어린 이씨의 뺨을 때렸다. 호되게 뺨을 맞은 이씨는 그만 앞으로 엎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 보니 큰 기와집도 여인도 온 데 간 데 없었다.
글방에 온 이씨는 훈장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 얘기를 들은 글방 훈장은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며 “자빠졌으면 천기박사(天機博士)가 될 텐데. 넘어졌으니 지리박사가 되겠군.”이라고 하였다. 훈장의 예언처럼 어린 이씨는 성장하면서 박달재에 앉아서도 부산포까지의 지리를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기인(奇人)이 되었다. 텃골 고개에 나타난 여인은 그 근처 깊은 산골에 살던 백 년 묵은 여우가 둔갑하여 이씨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입 속에 있던 구슬을 이씨에게 물게 하여 더욱 혹하게 하려는 것을 이씨가 삼켜 버렸으므로 어쩔 수 없어 물러난 것인데, 구슬의 효능으로 이씨는 앞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글방 훈장은 이씨를 위해 그렇게 시킨 것이다.
훤히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씨는 명당 묏자리를 보아 달라고 하면 자기 자손의 앞날과 비교해서 그것보다 못한 자리를 잡아주곤 하였다. 이러던 이씨가 노년에 이르러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는 두 아들을 앞에 불러서 이렇게 일렀다. “내가 죽은 다음 명당 두 군데 중 한 군데다 나의 묘를 쓰면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그 한군데는 지실 골짜기인데 엄동설한에도 닥나무에 꽃이 피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막대골에 노루가 죽어 있는 곳이다. 두 사람이 따로 한 곳씩을 찾되, 먼저 찾는 곳에 묘를 쓰고, 반드시 쇠갓을 쓴 사람이 묘 앞을 지나거든 그때 하관하고, 또 만일 안산에 산사태가 나는 일이 있으면 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얼마 후 이씨는 운명하게 되었고, 두 아들은 각각 선친이 일러준 명당을 찾아 나섰다. 큰 아들은 지실 골짜기를 샅샅이 뒤졌으나 닥나무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들은 막대골에 들어가 노루가 죽은 곳을 찾아냈다. 막대골에 아버지의 묘를 파고 쇠갓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렸으나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큰 아들이 그대로 하관을 고집하고, 작은 아들은 좀 더 기다리자고 우기다 결국 큰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하관하였다. 봉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산 위에서 어떤 여자가 쇠로 된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상주들은 하관의 때를 어겼음을 알았으나 도리가 없었다.
그런 후, 십 년이 지나 묘소의 안산에서 산사태가 났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급히 마을을 떠나면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떠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한 집만 이를 듣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떠난 직후 큰 홍수가 나서 이 마을이 몽땅 떠내려갔고, 남아 있던 한 집 식구는 모두 물과 함께 실종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전주 이씨의 선견으로 살아나 다시 텃골에 마을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장례 때 하관의 시(時)를 어겼기 때문에 이씨 가문에서 큰 인물은 나오지 못했다.
[모티프 분석]
「동막리 텃골에 얽힌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지리박사가 된 전주 이씨’, ‘하관의 시를 어긴 아들’, ‘전주 이씨의 예언’ 등이다. 글방 훈장의 도움으로 여우의 구슬을 삼켜 지리박사가 되었지만 자신이 죽은 후 묏자리를 쓸 때 아들들이 하관의 시를 어겨 집안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마을에 홍수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하여 알려 주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마을을 다시 새롭게 이룰 수 있게 하였다. 곧 전주 이씨 개인과 집안을 위해 활용한 풍수는 실패로 돌아가고, 공리적인 측면에서 활용한 풍수만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