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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호차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919
한자 義林湖次韻
영어음역 Uirimhochaun
영어의미역 Euirimho Chau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순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배경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241 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박수검

[정의]

조선 후기 박수검(朴守儉)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의 한가로운 정경을 노래한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임호(林湖) 박수검[1629~1699]은 44세 때인 1673년(현종 14) 별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 중간에 귀양을 가거나 퇴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생을 마칠 때까지 줄곧 조정의 부름을 받는다. 이 시기는 바로 사환기(仕宦期)로, 서인과 북인 사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른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과 기사환국(己巳換局) 등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그 속에서 임호는 자의든 타의든 서인의 입장에 서 있었다. 이 때문에 북인이 득세하던 시기에 내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다가 유배를 떠나기도 하는데, 옳다고 믿는 것에는 절대 굽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북인에 의해 국모(國母)가 폐출되는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분연히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제천으로 내려와 의림지에 정자를 짓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당시 자신의 호도 의림지를 뜻하는 임호(林湖)로 지었는데, 이때가 62세로 벌써 노년이었다.

이후 그는 벼슬에 뜻을 접고 이곳 의림지에서 소요하며 고향 자제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고, 때론 벗들과 의림지를 노닐며 풍월을 읊었다. 유유자적한 삶의 자취를 향유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에 지은 시가 바로 「의림호차운(義林湖次韻)」이다.

[구성]

수련에서는 여유롭게 의림지를 소요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함련에서는 저녁 무렵 의림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 경련에서는 글을 읽고 논의하는 즐거운 정경을 그렸고, 미련에서는 물결과 백사장을 보니 좋고 시를 다시 읊조리니 더욱 좋다고 심경을 말하고 있다.

[내용]

휴공만입경무하(攜笻晩入境無何)[지팡이 짚고 늦게 무하경에 들어오니]

탄아소용렵렵하(歎我疎慵獵獵荷)[나의 게으름 탓하듯 연잎은 나부끼네]

운일엄홍광자투(雲日掩紅光自透)[구름 낀 해 붉음을 가린 채 빛은 뻗쳤고]

수천함벽영상마(水天涵碧影相磨)[물과 하늘 파랗게 잠겨 그림자만 서로 붙었네]

수지차석론문세(須知此夕論文細)[모름지기 이 저녁에 글을 세세하게 논의하니]

유승전소득월다(猶勝前宵得月多)[전날 밤 달빛 오래도록 구경한 것보다 낫구려]

어랑로사간경호(魚浪鷺沙看更好)[고기 물결 백로 사장(沙場) 보니 다시 좋고]

위군조필일음아(爲君操筆一吟哦)[그대 위해 붓 잡고 한 번 읊조리네]

[특징]

각각의 연에 하(荷), 마(磨), 다(多), 아(哦)의 운자가 있다.

[의의와 평가]

당쟁의 소용돌이로 대변되는 혼탁한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고향 의림지에서 한가롭게 소요하면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노래한 이 시는 전형적인 강호가도(江湖歌道)의 문법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개인의 여유로운 삶이 하나로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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