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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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石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강창화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쓰던 시기.
[개설]
2011년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신석기 유적의 수는 70개소에 이른다. 제주특별자치도 본섬을 포함한 부속 도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전역에서 확인되는 추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산간 지역과 해안 저지대를 중심으로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의 연구 성과 및 자료를 통해 제주도 신석기 문화의 형성과 전개 양상을 정리해 보면, 현재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신석기 초기 문화 단계인 고산리식 토기 단계 및 그 이후에 나타나는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남부 지방 토기 단계의 흐름을 적용하여 제주도 신석기 토기의 전개 양상을 크게 5단계로 파악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 이어 조기 융기문 토기 단계, 전기 자돌·압인문 토기 단계, 중기 태선 침선문 토기 단계, 후기 압날점열문 토기[봉계리식 토기] 단계, 만기 이중구연 토기[율리식 토기] 단계로의 전개 양상이 파악된다.
[신석기 초기[11,000~8,000 B.P.]]
먼저 제주 신석기 고고학 연구는 고산리 유적의 발견을 시점으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신석기 초기 고산리 문화는 아직 한반도에서 이와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이 없어 비교 연구도 없는 실정이다. 다만 시베리아 아무르강 중·하류 오시포프카 문화의 유물 조합상, 일본 열도의 죠몽초장기의 유물 조합상을 비교하여 보면, 고산리식 토기의 사용 시기는 아무르강 유역의 오시포프카 문화 3단계에 해당하는 11,000~10,000 B.P.로 설정할 수 있다. 고산리 초기 신석기 문화는 고산리 2, 3기에 이르러 제주도 전역에 확산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강정동 1기, 삼양동 삼화 지구, 병문천 저류지 1기, 김녕리 1기, 예래동 유적 등이 있다.
[신석기 조기[8,000~6,500 B.P.]]
그 다음 시기로 이어지는 신석기 조기는 융기문 토기 단계이다. 고산리식 토기와의 공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고산리 문화의 종말기와 맞물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삼양동에서 융기문 토기와 함께 양면 박리의 첨두기와 석편이 출토되고 있어 융기문 토기의 상한 연대가 소급될 가능성과 고산리식 토기의 하한 연대가 내려올 가능성도 지적된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고산리 4기, 김녕리 2기, 고산리 동굴 1기, 강정동 2기, 삼양동 1기, 온평리 1지구, 사계리 단산 1기, 오등동 병문천 저류지 2기 유적 등이다.
[신석기 전기[6,500~5,500 B.P.]]
신석기 전기는 자돌·압인문 토기 단계로서 온평리 유적과 고산리 동굴유적 출토 압인 횡주 어골문 호형 토기, 삼양 유원지 출토 구순각목 횡주 어골문 호형 토기, 성읍리 농촌용수 개발 지구 내 유적에서 출토된 자돌문 원저발형 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계는 크게 자돌문계 토기 중심의 영선동식 토기 단계[1기], 횡주 어골문 토기가 중심이 되며 간헐적으로 구순각목 토기가 확인되는 단계[2기], 횡주 어골문이 퇴화하여 수직문이나 복합문으로 변화하는 단계[3기]로 세부 변화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산리 동굴 2기, 삼양동 2기, 온평리 2지구, 사계리 단산 2기, 오등동 병문천 저류지 3기 유적 등이다.
[신석기 중기[5,500~4,700 B.P.]]
신석기 중기의 전형적인 토기는 태선 침선문 토기이나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점에 대해 화산섬이 만들어 낸 수렵과 채집 및 어로 행위에 적합한 풍부한 생계 조건이 이미 주어진 최상의 환경 조건에서 애써 농경을 택할 이유가 없으며, 농경과 연관된 전형적인 태선 침선문 토기는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들었다. 그러나 이 시기가 공백기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섬이 갖는 문화의 전통성·잔존성·독특성으로 인해 전기 영선동식 토기 단계의 지속 가능성과 후기 봉계리식 토기의 상한 소급이나 선행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유적지인 성읍리 농촌 용수 지구에서는 전기 토기의 지속 가능성을 볼 수 있으며, 성읍리 문화 마을에서는 후기 토기의 상한이 소급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신석기 후기[4,700~4,000 B.P.]]
신석기 후기는 봉계리식 토기를 사용하던 단계로서, 성읍리 야외 생활 유적과 북촌리 암음 유적을 표식 유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성읍리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압날 기법의 단순·복합 문양은 전형적인 봉계리식 토기 전통을 갖고 있으며, 남부 지방 후기 토기군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러한 온평리 유적 압날문 토기는 압날 점렬문과 퇴화 침선문 토기를 표식으로 하는 북촌리식 토기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북촌리식 토기는 특정 문양의 선호, 조흔 수법, 거치상의 침선 수법 등이 봉계리식 토기의 전통 위에 삼각형의 문양과 같은 독자적인 문양 형태를 발전시킨 재지적(在地的)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토기이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성읍리 1기, 북촌리 1기, 삼양동 3기, 월령리 동굴, 하모리 1기, 한남리 1기, 월령리 동굴 유적 등이다.
[신석기 말기[4,000~3,000 B.P.]]
신석기 말기는 이중구연 토기를 대표로 하는 단계이다. 북촌리 바위 그늘 유적 최하층[Ⅴ층]을 표식으로 하며 Ⅴ층에서 채집한 전복패 시료의 C14 연대가 2,920±25 B.P.로 검출되어 하한 연대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이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들은 해안 사구층 하단 또는 해안 인근 평탄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시기에 와서 본격적인 패총이 만들어지며 해안 저지대를 중심으로 한 인구 확산과 안정된 생계 패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덧붙여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하모리 유적 2기 단계에 와서 이중구연 토기와 함께 직립 구연의 무문양 발형 토기가 일부 공반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 시대 무문 토기로 이어지는 자체 토기의 발전도 예시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북촌리 2기, 삼양동 4기, 하모리 2기, 한남리 2기, 사계리 단산 3기, 우도 패총 등이다.
[신석기시대 토기 문화의 변천]
제주도 신석기 토기 문화의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전개 양상이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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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신석기 관련 자료의 증가로 기존에 설정[이청규, 1995] 되었던 제주도 신석기시대 편년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모색이 필요하다. 제주도 신석기 문화의 특징은, 신석기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고산리 유적의 유물 조합상과 비교하여 한반도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 점, 남해안 신석기시대 문화 단계에서 중기 단계의 부재, 후기 단계의 봉계리식 토기가 독자적으로 재지화(在地化)되고 변화되는 모습, 이와 더불어 봉계리식 토기와 그 다음 단계인 이중구연 토기와의 관계 설정에서 뚜렷하지 않은 점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