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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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尊者庵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1-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한금실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7월 13일 - 존자암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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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11월 1일 - 존자암지 세존사리탑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존자암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1-1 |
성격 | 사찰 |
전화 | 064-749-1414 |
홈페이지 | 존자암(http://www.jonjaam.com)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존자암은 1,362m 불래오름을 주봉으로 남사면의 평평한 등선 마루에 올라서 있는 사찰이다. 존자암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법주기(法住記)』에서 존자암의 기원을 찾는 이들은 이곳을 한국 불교 초전 법륜지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1498년 유배된 후 8년 여를 제주에 살았던 홍유손이 존자암을 중수하기 위해 지은 「존자암개구유인문(尊者庵改構侑因文)」[1507]에서, “존자암은 비보소(裨補所)이자 세상에 이름이 난지 오래이다. [중략] 뿐 만 아니라 나라에서 이 암자에 논을 하사하여 벼를 심어 재를 지낼 경비로 삼고, 음력 4월 길일을 잡아 세 읍의 수령 중 한 사람을 뽑은 다음 목욕재계하여 이 암자에서 제사 지내게 하고 이를 국성재라 하였는데, 지금은 이 제사가 폐지된 지 6, 7년이 되었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의 배불 정책이 강화되면서 서서히 소멸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 외 기록으로는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되어 왔다가 1521년 사사된 충암 김정이 『충암집(冲庵集)』에서 “존자암은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났을 때 만들어져서 삼읍의 정립 후까지 오래 전해졌다.”라고 한 것 등이 있다.
그리고 존자암의 변화는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이다. 1653년(효종 2) 『탐라지(耽羅志)』를 보면 “옛날엔 한라산 영실에 있었다. 그 동굴에 수행하는 승려의 모습인 돌이 있어 수행동이라 전한다. 지금은 서쪽 기슭에서 밖으로 10리쯤으로 옮겼는데 곧 대정 지경이다.”라고 되어있다. 즉, 1653년 그 어느 시기에 영실에서 대정 지경으로 옮겨진 것이 된다. 이렇듯 위상에 변화가 생긴 존자암은 이곳저곳으로 옮겨지다가 조선 후기의 대대적인 억불 정책에 의해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파악된다.
[활동사항]
현재 존자암은 100일 기도 영험 도량으로서 매월 음력 초하루 신중 기도, 초7일 칠성 기도, 16일 산신 기도 재일을 드리며 매년 봄 4월초부터 49일동안 선망 부모 가족 천도재를 봉행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제주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존자암지를 발굴한 결과 건물지, 사리탑, 적석(積石)시설과 명문(銘文) 기와편, 명문 백자편 및 청자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1998년 여름부터 복원 불사에 들어가, 현재 국성재각·대웅보전·요사채 등을 중창하였다.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측에는 이곳에 불교를 전했다는 발타라존자를, 우측에는 산신을 봉안했다. 현재 존자암지는 1995년 이래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관련 문화재]
존자암지 세존사리탑은 2000년 11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리탑은 고려 말 혹은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내 유일의 부도이다. 총 높이 181㎞에 팔정도를 상징하는 8각형 기단 위에 둥근 괴임돌을 놓고 탑신을 얹은 후 옥개석과 보주를 올린 모습이다.
그 외 존자암 청동제 지국천왕상은 부조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왼손은 칼을 들고 오른손은 허리춤을 짚고 있는 모습이다. 도포의 가슴선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다리 부분은 결실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