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211 |
---|---|
한자 | 寺刹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집필자 | 한금실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과 교법을 설하는 승려들이 거주하는 장소.
[개설]
사찰은 가람(伽藍) 또는 사원(寺院)이라고도 하는데, 가람이란 범어 Sañghãrãma를 음역하여 만든 용어이다. 이는 중원(衆院) 또는 정사(精舍)라는 뜻으로 남자 승려[비구(比丘)]·여자 승려[비구니(比丘尼)]·남자 신도[청신남(淸信男)]·여자 신도[청신녀(淸信女)]와 같은 4중(四衆)이 모여 사는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변천]
1. 고려 시대
고려 시대는 제주불교의 전성기로 법화사(法華寺)·존자암(尊者庵) 등 제주도의 대표적인 사찰이 서귀포에 대거 분포해 있었다. 고려 시대 사찰을 살펴보면, 먼저 법화사는 고려의 비보사찰로서 국가 차원의 각종 지원을 받는 산남의 대표적 사찰이었다. 조선 태종 때까지도 법화사의 노비가 280명이었고, 조선의 배불 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사찰 정비 이후에도 여전히 노비 30여 명을 거느렸을 만큼 제주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다음으로 존자암은 제주에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국성재(國聖齋)를 지내던 비보사찰이었다. 현재 존자암지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어 복원되고 있으며, 이곳의 존자암 세존사리탑은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도내 유일의 부도이다.
수정사(水晶寺)는 고려 시대 산북을 대표하는 비보사찰이었다. 조선 태종 때에 이르기까지 수정사는 법화사와 마찬 가지로 노비 130명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30명의 노비를 두던 대가람이었다. 그러나 제주의 대표적 사찰로 존속되던 수정사는 현재 신도시 개발에 발굴 조사마저 파묻혀 더 이상 그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수정사와 함께 산북을 대표하는 사찰로 원당사지(元堂寺址)가 있다. 현재 불탑사와 원당사가 자리하고 있는 원당사지는 중국 원나라 황실에 공녀(貢女)로 끌려갔다가 원나라 순제의 제2황비가 된 기황후(奇皇后)가 태자를 낳기 위한 원찰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 시대 제주불교의 수준 높은 문물을 확인할 수 있는 사찰로는 묘련사지(妙蓮寺址)가 있다. 고려 시대 고승 혜일선사(慧日禪師)의 시에 기록되어 전해져 온 묘련사는 발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찰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함은 물론 청자를 비롯한 일부 유물들이 분실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순천송광사장고려판천순판불전(順天松廣寺藏高麗板天順板佛典)」에 제주 묘련사에서 불경 판각이 행해졌었다는 기록이 밝혀지면서, 원나라 지배기 이전에 이미 제주불교가 상당한 불경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 시대 불상이 남아 있는 곳으로는 만수사지(萬壽寺址)와 해륜사지(海輪寺址)가 있다. 제주 시내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에 고려 시대의 미륵불로 추정되고 있는 복신미륵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 동쪽 건입동에 있는 것을 동자복, 서쪽 용담동에 있는 것을 서자복이라 이름한다. 본래 동자복 미륵은 만수사 경내에, 서자복 미륵은 해륜사 경내에 있었으나, 만수사와 해륜사는 1702년 이형상에 의해 헐리었고 현재 미륵불만 남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고려 시대 사찰로는, 고려 충렬왕 무렵인 1275년에서 1308년 사이에 활동한 시승(詩僧) 혜일의 시에 묘사된 서천암과 보문사,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 강림사지, 곽지사지, 고내리 사지, 금덕리 사지, 일과리 사지, 서천암지, 오조리 사지, 광령리 사지, 성불암지, 상귀리 사지, 보문 사지, 관음사지, 해안동 사지 등이 있다. 이외에도 현재 확인된 폐사지는 74곳에 이르며, 그밖에 30여 곳의 사찰 터가 더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조선 시대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제주도의 사찰은 존자암·월계사·수정사·묘련사·문수암·만수사·해륜사·강림사·보문사·서천암·소림사·관음사·영천사·법화사·성불암 등 모두 15곳이다. 165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志)』에는 당시 현존하는 16개의 사찰과 4개의 폐사지를 싣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비교해 보면 안심사·원당사돈수암·굴사·곽지사 등 5개의 사찰이 더 기록되어 있다.
1700년대 무렵에 제작된 『탐라전도(耽羅全圖)』에는 강림사·만수사·해륜사·월계사·서천암·존자암·법화사·성불암·영천암의 9개 사찰이 실려 있다. 『조선강역총도(朝鮮疆域叢圖)』에도 법화사·영천사·성불암·묘련사·수정사·소림사·존자암·문수사·만수사·강림사의 10개 사찰이 표시되어 있다. 1750년 무렵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나오는 「제주삼현도」에는 해륜사와 대천사, 그리고 존자암 3곳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 1800년대 후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그릴 때 저본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여도(東輿圖)』에는 수정사와 수행굴이 표시되어 있다.
3. 근·현대
1945년경 제주의 사찰 수는 100여 곳이었다. 그러나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현재까지 조사된 결과에 의하면, 4·3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찰은 35곳이며, 16명의 승려들에 대한 인명 피해도 확인되었다. 기록에 나타난 100여 곳의 사찰 중에서는 약 8곳의 사찰만 파옥되거나 불태워지는 피해를 면했는데, 나머지 50여 곳은 그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당시 승려나 사찰의 분위기가 일반 속인들과 함께 비승 비속의 모습으로 생활했던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록에 등재되지 않았던 사찰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현황]
현재 서귀포시에 있는 사찰은 약 85곳이 된다. 먼저 조계종(曹溪宗) 사찰로는 존자암·법화사·약천사·남국선원·서산사·선덕사·봉림사·관통사·월라사·기원정사·극락사[서귀]·신광사·천제사·탐라선원·법성사·자성원·봉원사·불광사·표선사·연화사[표선] 등 20곳이다. 태고종(太古宗) 사찰은 정방사·원만사·영천사·광명사·선광사·동암사·구룡사·산방사·영산암·단산사·혜광사·대원사·공덕사·영원사·운천사·백련사·용문사[서귀]·자광사·락원사·수정사·심향사·혜림사·복천사·보타사·서광사·종남사·정각사·남안사·달성사·보석사 등 30곳이다. 법화종(法華宗)은 혜관정사·무량정사·영산사·대승사·법정사·보장사·광화사·실상사로 8곳, 일붕선교종(一鵬禪敎宗)은 광명사·관음굴사·왕자암·원광사·경운사·영조사·홍덕사·대원사·보현사·남덕사 등 10곳이다. 총화종(總和宗)은 용운사[서귀]·해운사[토평] 2곳, 천태종(天台宗)은 가파도에 있는 해운사가 있다. 원효종(元曉宗) 사찰은 보문사·덕산정사·연화사[위미]·보덕사[안덕]·대흥사 등 5곳이며, 아미타종 법련사와 기타 선도암·한라암·용천사·월광사·영산법화사·천덕사·황룡사·법정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