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리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금동면(金洞面)은 금동방(金洞坊)이라고도 하였다. 1758년(영조 34)에 발간된 『순창군 읍지(淳昌郡邑誌)』에는 금동방이 군의 서남쪽 약 7.85㎞[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60년에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에는 금동방이 군 서남쪽 약 7.85㎞에 있으며 리 11개, 호구(戶口) 342호라고 되어 있...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계리(南溪里)는 남계 마을과 호치(虎峙)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400여 년 전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처음 터를 잡고 살다가 집안이 몰락하여 이사하고, 그 후 유신곤(柳晨坤)이란 사람이 인근 호치 마을에서 거주하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남계 다리 앞 서당재 밑에 동산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內洞里)는 내동(內洞) 마을과 연화(蓮花)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내동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순창 설씨(淳昌薛氏)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로 내동 마을의 ‘내(內)’ 자는 세 방향이 가려져 있는 곳에 한 나무의 뿌리 두 개가 깊숙이 들어간 형상을 말하고, ‘동(洞)’ 자는 깊숙한 굴을 의미하...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우리(梅宇里)는 매우(梅宇) 마을, 밭매우[밭梅宇] 마을, 신매우(新梅宇) 마을을 통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매우 마을은 한때 모정리(茅亭里)라 불렀으며, 울타리처럼 뻗은 나뭇가지나 소쿠리처럼 오목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 뒷산의 형상이 집안에 매화꽃이 만발한 모양이라 하여 ‘매화 매(梅)’에 ‘집 우(...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밭매우 마을에 있는 돌탑. 금과면 매우리(梅宇里)는 1914년 행정 지명이 모정리(茅亭里)로 바뀌었다가 2007년 다시 매우리로 바뀌었다. 신매우 마을, 매우 마을, 밭매우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밭매우 마을은 지리적으로 매우리 바깥에 위치하여 밭매우라고 불렀다. 원래 ‘매우’라는 지명은 마을 뒷산 지형이 집 안에 매...
-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목과동면(木果洞面)은 목과동방(木果洞坊)이라고도 하였으며, 줄여서 목과면(木果面) 또는 목과방(木果坊)이라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월경지(越境地)로 담양(潭陽) 동촌(東村) 저동(猪洞)이 군의 남쪽 지경 목과동리(木菓洞里)에 들어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758년(영조 34)에...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삼외당(三畏堂)은 선조 대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사헌부 감찰, 문경 현감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 막하에 들어가 여러 차례 공을 세운 순창 출신 홍함(洪涵)[1549~1593]의 정자이다. 홍함이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에 출전하기 전에 정자를 지어 자신의 호를 붙여 삼외당이라 이름 붙이고...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 있던 조선 전기 정자. 순창군 금과면 마암촌 출신인 설홍윤(薛弘允)[1515~1583]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자는 공신(公信), 호는 청취정(淸翠亭)이다.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고향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당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7~1584]는...
-
순창은 맑고[淳] 창성[昌]한 땅이다. 순창은 예로부터 옥천(玉川)·순화(淳化) 등으로 불릴 만큼 물이 맑고 순박하며, 절경이 많고 인심이 후덕하여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순창은 전라북도 동남부 산간 분지에 속하지만, 예로부터 풍부한 농경 생산 덕택에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알려졌다. ‘생거순남(生居淳南) 사거임실(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