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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최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94
한자 全州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전주 최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운림리 지도보기|내월리지도보기
성씨시조 최군옥(崔群玉)
입향시조 최추(崔湫)

[정의]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최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전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전주 최씨 입향조는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증손자인 화서(華西) 최추(崔湫)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만 2147가구, 39만 2548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전주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 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 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리다 555년(위덕왕 2) 완산주(完山州)로 개칭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완(完)을 의역하여 전주로 고쳤다.

전주 최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네 개의 계통이 있다. 고려 문종(文宗) 때 문과에 올라 중서시랑을 거쳐 문하시중으로 완주백(完州伯)에 봉하여진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계(文烈公系)와 고려 인종(仁宗) 때 문과에 올라 예부 낭중을 역임하고 예부 상서에 이어 상서좌복야에 추증되었으며, 사도(司徒)에 추봉(追封)된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복야공계(僕射公系) 또는 사도공계(司徒公系)가 있다. 그리고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찬성사를 지내고 문하시중 평장사에 오른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계(文成公系)와 고려 선종(宣宗) 때 진하사로 송(宋)나라에 들어가 그 곳에서 문하시랑을 역임하고 귀국하여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라 완산 부원군(完山府院君)에 봉군된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계(文忠公系) 등의 4대 계파가 그것이다. 문성공계의 시조 최아가 문열공계의 시조 최순작의 7세손임이 고증되어 3대 계파로 보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상신 3명, 대제학 2명, 청백리 3명, 문과 급제자 109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 인물은 최명길(崔鳴吉)인데, 인조반정 때 1등 공신으로 대제학,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최명길의 손자 최석정(崔錫鼎), 최석항(崔錫恒) 형제도 숙종(肅宗)경종(景宗) 때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특히 최석정은 당시 소론의 영수로서 당론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6차례나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순창 지역에 입향한 전주 최씨는 문충공계로, 최군옥의 8세손 만육 최양[1351~1424]의 후손들이다. 최양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조카로 정몽주에게 글을 익힌 후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 우왕(禑王) 때 보문각 대제학에 이르렀다. 그러나 외숙인 정몽주가 살해되고 고려가 망하자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중대산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등 벼슬을 주면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도 불렀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았는데, ‘최고집’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최양은 후에 전라북도 전주시 대성동으로 옮겨 말년을 보냈다. 두문동 72현록에 들어 있으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전주 서산사(西山祠)에 제향되었다. 전주 최씨 문충공계는 10세손 최여징의 부사공파, 최여문의 정랑공파, 11세손 최진강의 목사공파, 최만득의 교위공파 등으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1504년(연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비인 현감을 지냈던 최추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많은 선비가 화를 입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동적성 내적 마을[지금의 적성면 운림리 임동 마을적성면 내월리 내적 마을 일대]로 은거하여 들어와 정착한 이후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당시 내적 마을이 적성으로 불렸으므로 동적성이 현재 내적 마을의 구례치를 말하는지, 아니면 농소 마을이나 임동 마을을 일컫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추의 후손으로 1500년대 말에 태어나 훈련원 판관을 지낸 최규(崔珪)와 1759년(영조 35)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에 오른 최경악(崔景岳)이 있다. 임동의 전주 최씨는 500년의 역사를 가진 순창의 토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 전주 최씨는 252가구, 63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의 전주 최씨적성면 운림리 임동 마을내월리 내적 마을에 30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으나 2013년 현재 내월리 내적 마을에 6가구만 거주하며, 대부분 최규의 후손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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