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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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아버지는 고려 후기 예조판서를 역임한 김승로(金承露), 어머니는 상서(尙書) 이복득(李福得)의 딸이다. 아내는 원주원씨이다. 김방(金倣)은 1415년(태종 15) 지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으면서 2만 명의 인부를 20여 일간 동원하여 벽골제를 보수 공사함으로써 방죽 아래 땅을 옥토로 만들어 군민(軍民)의 식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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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서를 시조로 하고, 김정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김제김씨(金堤金氏)의 시조는 김알지의 후손이자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천서(金天瑞)로, 고려시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다. 김천서가 김제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은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우고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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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경령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 두경령(杜慶寧)은 송(宋)나라에서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고려시대에 만경(萬頃)을 식읍지로 하사받았다. 만경은 백제 때는 두내산현(豆乃山縣)이라 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 주산(主山)에 두씨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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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세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선산김씨(善山金氏)는 문성왕 8세손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일선(一善)[지금의 선산]에 이르러 모병(募兵)하였는데, 문성왕 8세손이 종군할 것을 희망하니 왕건이 크게 기뻐하여 친히 어궁(御弓)을 하사하고 ‘선궁(宣弓)’이라 사명했다. 김선궁은 그로부터 왕건을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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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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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벽골제 제방 공사에 투입된 인부들의 수를 세던 곳. 1415년(태종 15) 벽골제(碧骨堤)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당시, 하루에 1만여 명이나 동원되는 인부들의 현황을 매일같이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자, 임시방편으로 일정한 크기의 논에 사람들을 빽빽이 세워서 곡물(穀物)을 되질하듯 인원수를 헤아려 냈다고 한다. 이를 승답(升畓)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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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경을 시조로 하고, 강원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신천강씨(信川康氏)의 시조는 신라 때 고관 강호경(康虎景)이나, 실제로는 강호경의 13세손인 강지연(康之淵)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국에 사는 강씨(康氏)는 누구든지 중시조인 강지연의 후손이라고 『기미보(己未譜)』에 밝히고 있다. 강지연은 몽골 침입 때 고려 고종을 따라간 호종공신(扈從功臣)이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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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안사종(安士宗)의 아들이고, 형은 안기(安起)이고, 동생은 안일(安逸)이다. 안지(安止)[1377~1464]는 조선시대인 1414년(태종 14)에 문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에 임명되었다가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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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자 의병. 정묘호란은 1627년(인조 5)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에 대한 주전정책(主戰政策)이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 인조 즉위 후 집권 세력인 서인은 광해군 때의 대외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후금과의 관계를 끊는 한편,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후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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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수리 시설인 벽골제(碧骨堤)는 노령산맥(蘆嶺山脈)의 중봉인 모악산(母岳山)·구성산(九城山)·상두산(象頭山) 등에서 발원한 풍부한 물이 흘러 이루어진 원평천(院坪川)·두월천(斗月川)·감곡천(甘谷川)·금구천(金溝川)·신복천·오주천의 물을 모았다가, 금만평야를 비롯하여 정읍과 부안군 일부 지역 농지에 농업용수로 공급하였다. 오늘날의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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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이후 1636년(인조 14) 4월 후금의 태종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이 왕자와 대신 그리고 척화론(斥和論)을 주장하는 자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당시 척화의 분위기가 고조된 조선 조정이 이를 거부하자 태종이 재차 침입을 감행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조선 조정은 12월 13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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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일제강점기 전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김제의 역사. 조선시대 지방 통치제도는 이미 태종 대[1400~1418년]에 대개 확립되었고, 세조 대[1455~1468]에 일부가 개정되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었다. 김제 지역에는 조선시대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우선 1403년(태종 3)에 김제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415년(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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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탐진안씨 동성마을. 탐진안씨(耽津安氏)의 시조는 안원린(安元璘)으로 본명은 안원륜(安元崙)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정당문학(政堂文學)·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내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탐진을 관향으로 삼았다. 탐진안씨는 안원린을 시조로 하고 안우(安祐)·안지(安止)의 후손들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