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588
한자 龜岩里社倉址
영어의미역 Village Granary Site in Guam-ri
이칭/별칭 구암리 사창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420-4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종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창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420-4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사창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창 터.

[개설]

사창(社倉)은 조선시대 지방의 각 촌락에 설치된 일종의 곡물 대여 기관이다. 의창(義倉)과 같은 성격의 기관이나 의창은 국영이요, 사창은 사(社)[행정단위로 지금의 면]에서 경영하는 것이었다. 사창의 기능으로는 고곡(古穀)을 대출하고 무이자로 신곡을 받는 것, 곡물을 대여하여 이자만 받는 것, 춘궁기에 대출하여 가을에 이식과 함께 받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변천]

사창산에서는 조선시대에 인근 지방, 즉 개토(介吐), 모촌(母村), 금굴(金掘), 공동(孔洞), 회포(回浦), 연산(延山), 백석(白石) 등 7개 면의 국가 상환곡(償還穀)을 수납 창고 형태로 관리하였다. 이 사창산은 일명 수동산이라고도 하는데 백제시대에는 수동산현(首東山縣)이 있었던 곳이며 통일신라시대에는 평고현(平皐縣)이 위치하기도 한 고적지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정부의 세미(稅米)와 군량미를, 조선시대 때에는 구휼미를 보관하였다가 흉년이 들거나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울 때 보관했던 쌀을 풀어 구원했던 곳으로 현재도 사창산 등성이에서 썩은 쌀알이 발견되곤 하여 위의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사창이 조선 후기에 편찬된 『김제읍지(金堤邑誌)』에는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김제동헌에서 사창산까지 직선거리는 약 8㎞이므로 20리가 되지만 방향은 동쪽이 아니라 동북쪽이다. 한편 읍지의 앞에 붙어 있는 김제군계 지도에 사창의 건물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 방향은 동북쪽이며 지금의 용지면에 해당한다.

[위치]

구암리 사창 터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면소재지 뒤쪽에 있는 사창산에 있다. 사창산은 호남선 와룡역부용역 중간지대에 위치한 해발 63m의 낮은 언덕배기에 불과하나 역사적으로 이 산이 지닌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현황]

1918년 『김제군지』에는 “사창지는 용지면 신평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社倉在龍池面新平里今無)”라고 하여 사창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를 밝히고 있다. 구암리 사창 터는 사적지로 보존되지 못하고 등성이의 파헤쳐진 밭에서 아무렇게나 곡물이 자라고 있으며 양쪽[남북] 등성이에 석산이 개발되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영고성쇠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