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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57
한자 安廷益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An Jeongik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116-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892년(고종 29) 10월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116-2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지정되지 않음
문화재 지정일 지정되지 않음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안정익의 정려.

[개설]

안정익(安廷益)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충효의 가정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으며, 효성이 남다르게 지극하였다. 불행하게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만을 봉양하게 되었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못함에도 지성으로 모셨으나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자, 간호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께 피를 마시게 하여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그러나 끝내 돌아가시자, 그 애통해하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예절을 다하여 장례를 모신 뒤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통곡하니 지나는 사람까지도 효자라고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3년이 지나 상복을 벗은 뒤에도 여든이 넘도록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반드시 성묘를 하되 바람이 불고 비오는 날이라도 그치지 아니하였다.

안정익의 효행을 기리고 후세에 귀감으로 삼기 위하여 1892년(고종 29) 통정대부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通政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에 증직하고, 효자의 정려를 명하여 재목과 목수 등을 모두 대주고 그 자손들에게는 잡부금이나 부역을 면하게 하였다.

[위치]

백산면사무소 앞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1㎞쯤 가면 왼쪽에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가면 학당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가운데에 안정익 정려가 있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정려각은 처음에는 기와지붕을 사용하였지만 나중에 시멘트 기와로 바꾸었다. 담장도 시멘트를 사용하여 130㎝ 정도 되도록 쌓았는데 지금은 철 기둥에 쇠사슬을 연결하여 정려각을 보호하고 있다.

[현황]

정려각 안의 현판에는 ‘유명조선국효자행통정대부부호군안정익지려(有明朝鮮國孝子行通政大夫副護軍安廷益之閭)’라고 적혀 있다. 간지는 ‘성상즉위이십구년임진십월일명정’이라고 되어 있어 1892년(고종 29)에 정려가 내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는 학당서원(學堂書院)이 위치하고 있다. 학당서원은 조선시대인 1654년(효종 5)에 창건하여 1868년(고종 6)에 철폐되었던 것을 1971년 다시 지었다. 이곳은 순흥안씨 안처를 주벽으로 모시기 때문에 바로 옆 마을의 효자 안정익 정려도 더불어 지역민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 안정익은 남들이 꺼려하는 아버지의 변을 맛보고 단지수혈하는 효행을 몸소 실천하여 지역민들에게 많이 회자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