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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A010203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 화양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문예은

[예견된 재앙]

광활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화양마을은 물론이고 광활면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방조제 관리였다.

광활방조제는 일본인 후쿠이가 관할하면서 2년 넘게 공들여 만든 것으로, 광활면의 너른 땅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이 광활방조제였다.

그래서 광활방조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철저한 감독 아래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 왔다. 9일에 한 번씩 9개 답구에서 순번을 정해 만경읍 심포리에서 돌을 실어다가 부실한 곳을 갖다 메우고 관리를 하며 보강 공사를 해 왔다. 하지만 8월 15일을 해방을 기해 일본 사람들이 나간 이후 제방을 돌보는 일이 소홀해졌다.

해방 이후 광활방조제에 대한 관리는 국가에서 주민들에게 책임을 미뤘다.

방조제 관리에 허술한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고, 심포리에서 돌을 실어 오기 위해 필요한 철도 시설마저 한국전쟁 중에 누군가가 모두 가져가고 말았다. 결국 마땅한 해결책 없이 제방은 근 6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바닷물에 잠긴 논과 집]

광활면의 제방이 터진 것은 1952년 9월 4일이었다.

1년 중에 가장 물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인 백중사리에 태풍이 겹치게 되어 제방이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린 것이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불던 날 8답구 쪽에서 약 5m 가량의 제방이 끊어져 버렸다. 터진 제방 사이로 파도가 밀려 들어와 뚫린 자리가 점점 커져 갔고, 결국 바닷물이 들어와 구도로 아래 논까지 물에 잠겼다.

무너진 방조제 사이로 바닷물이 5답구 아래까지 넘실거리면서 한창 커가던 벼들은 바닷물에 잠겨 버렸다.

[수용소 생활을 하다]

최성진[1936년생] 할아버지는 당시의 일이 지금도 눈앞에서 생생하게 아른거린다고 했다.

“아이고, 그 일을 어떻게 잊어. 생생하게 기억해. 그때 우리 집이고 땅이고 전부 물에 잠겼어. 논도 벼 모가지까지 물이 찰랑찰랑 들어왔더라고. 마을에 차가 들어왔어. 버스가. 난 그날 버스를 처음 봤네. 성덕공립보통학교하고 죽산국민학교에 임시 대피소가 마련되어 가지고 거기로 다들 갔어. 한 2박3일 정도 지냈을 거야. 큰 가마솥으로 밥을 해서 동글동글하게, 주먹만 하게 뭉쳐 가지고 한 사람당 하나씩 받았어. 그게 한 끼 식사였어.”

얼마 후 집에 돌아와서 봤더니, 집안 세간이 물결 따라서 전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단다.

“아 거기서 어떻게 살어. 못 살지. 정부에서 수해민들한테 텐트를 줬어. 지금 광활초등학교 앞에 공터가 크게 있었거든.

거기에 천막을 대고 텐트를 쳤지. 그때 텐트 하나당 두 식구가 살았어. 근데 그게 살 수 있겄어? 임시방편이지.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나갔어. 얼마 못 버티고. 우리랑 같이 살던 가족도 나가 버리더라고. 그때 마을에 피난민 살으라고 집을 지어 준 게 있었거든?

왜 한국전쟁 나가지고 피난민들이 많이 들어왔던 때야. 그 사람들 살라고 정부에서 11칸씩 2줄로 된 집을 지어 줬는데 수해민들도 거기 가서 살았지. 수용소라고 불렀어.

그냥 방 한 칸씩으로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지. 지금은 없어졌어. 거기 집짓고 다른 사람이 살고 있잖아.”

그렇게 수해민 중 대부분은 집과 논을 바다에 빼앗기고 정부에서 제공해 준 텐트에 의지하거나 수용소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인근 마을로 이사를 가거나 멀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국유지에 집을 짓다]

최성진 할아버지네는 당시 텐트를 친 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기존의 6답구에 잠긴 집을 그대로 떼어다가 부엌 한 칸, 방 한 칸을 옮겨 지었다.

당시 정부에서 수해민들을 위해 텐트를 쳐 준 자리는 학교 땅으로 국유지였다. 국유지에는 개인이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학교 관계자가 찾아와 집을 못 짓게 했지만, 다른 수가 없어서 학교 앞의 특성을 살려 아이들 학용품을 파는 문방구나 가게를 하면서 해마다 한 칸 두 칸 집을 늘려갔다. 최성진 할아버지 댁은 개보수 공사를 하여 예전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담벼락 바로 뒤에 학교 건물이 있는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보제공]

  • •  조용환(남, 1935년생, 옥포리 화양1구 이장 겸 노인회장)
  • •  최성진(남, 1936년생, 옥포리 화양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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