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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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吾老里 |
영어음역 | Oro-ri |
이칭/별칭 | 오을고개,오르곡,오로촌(吾老村)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천명희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오로리의 옛 이름은 오을고개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두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올라가는 고개, 즉 오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에 따르면,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을 숙청할 때 그 아들 심회(沈澮)가 유모의 헌신으로 오로리 가좌골로 와서 강거민(康居敏)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뒷날 심온의 결백이 밝혀지고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러 양아버지인 강거민에게 벼슬길에 나오기를 권하였으나 강거민이 “오로사(吾老死: 나는 이곳에서 늙어 죽을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을 부당하게 여긴 세력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할 때 생육신 이맹전(李孟專)의 장인인 김성미(金成美)가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오로리 뒷산인 직학곡(直學谷)에 올라가서 매일 단종이 유폐된 영월을 향하여 곡하며 절을 하였다. 이후 매방골에 오로재(吾老齋)를 짓고 많은 후학들을 길러 내낸 데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망장방(網張坊)에 속하여 하망장리(下網張里), 파토리(巴吐里), 서내방(西內坊)에 일부가 나누어져 있었다. 1896년경 망장방이 망장면으로 개편되면서 망장면 오로동리(吾老洞里)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아면 오로동이 되었고, 1988년 동이 이(里)로 바뀌면서 고아면 오로리가 되었다. 1997년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고아읍 오로리가 되었다. 1998년 오로1리와 오로2리 두 개의 행정리로 편제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 들판을 경계로 선산읍 원리, 남쪽으로 산과 들을 경계로 관심2리와 접한다. 남서쪽으로 대망천과 산을 경계로 대망리와 파산리, 서북쪽으로 신기산과 관산을 경계로 황산리와 접한다. 북쪽으로는 감천과 들을 경계로 선산읍과 접한다. 장대골, 흥사골, 인어리들, 마마골 등의 넓은 평야가 있다.
[현황]
고아읍 서북쪽 1㎞ 지점에 있는 마을로,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2.70㎢이며, 총 1,182가구에 3,552명[남 1,850명, 여 1,7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선산읍 원리와 경지를 함께 쓰며 공동 경작을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1987년 농공 단지가 조성된 뒤로 공단에서 일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정보화 마을로도 지정되어 금오산찰쌀보리마을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특산품으로 금오산 찰보리, 금오산 수박, 보리떡, 우렁이 농법 쌀 등이 생산된다. 국도 33호선이 마을을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