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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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旺岩洞 |
영어음역 | Wangam-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금열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아랫소새에 있는 바위인 왕암(旺巖)에서 따 온 이름이다. 왕암은 1894년 시작된 갑오개혁 때 세 쪽으로 갈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각각 왕바위[王巖], 마고할미바위[麻姑巖], 염불바위[念佛巖]로 불린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제천군 근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묵지리(墨只里)·소사리(所沙里)·한의동(閑儀洞)을 통합하여 왕암리가 되었고, 1920년 9월 봉양면에 편입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원군 봉양면 왕암리가 되었고, 1983년 봉양면에서 제천시로 편입되어 제천시 왕암동이 되었다. 2003년 행정동인 용두동 관할 법정동이 되었고, 2010년 6월 1일 제천시 공고 제2010-728호에 따라 봉양읍 미당리·명도리·봉양리 각 일부를 편입하였다.
[자연 환경]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으로 봉양읍 미당리 백곡산에서 발원한 백곡저수지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소하천이 농경지에 관개하여 벼농사가 성하였으나 점차 산업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2004년 왕암동 140번지 외 일원에 1.20㎢ 규모의 첨단 바이오산업 단지인 제천바이오밸리, 2010년 1.30㎢ 규모의 하이테크밸리를 조성하면서 자연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어 전형적인 농촌의 자연 환경을 잃어버렸다.
이로써 본소새·웃소새, 새터산 밑에 있던 마을을 비롯하여 큰재·작은재·황새등·시까치·시까치재·승지골·삼밭골·장가지골·장선골·달바골·재피골·장자텃골·아래참새골·웃참새골·즘말·즘골·소사리·묵지리·먹거리·쇠경텃거리·설겅지·물레방아둥지·폭포둥지·너시럭바우·암바우·숫바우·주막·새터못·엿마지기·사흘가리·당집·서낭댕이·서낭뒷골이 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묵지리는 두 개의 선돌 사이로 흐르는 개울가의 흙이 검어서 붙인 이름이다. 소사리는 아랫소새와 웃소새로 나누어졌으며, 한의동은 연산군 때 아홉 명의 국사범(國事犯)이 낙향하였다는 구학산(九學山) 서쪽 골짜기에 있다. 달리 한의골이라고도 하며, 단종 유배 때 낙오한 시녀인 한씨가 출가하여 승려로 살았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현황]
왕암동은 제천 시내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4월 30일 현재 면적은 4.41㎢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밭이 0.51㎢, 논이 0.47㎢이며 총 382가구에 1,003명[남자 512명, 여자 4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북쪽으로 봉양읍 미당리, 동쪽으로 하소동·신월동, 서쪽으로 봉양읍 봉양리, 남쪽으로 천남동·신동과 이웃한다.
교육 기관으로 왕미초등학교가 있고, 문화 유적으로 2001년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왕암동 유적, 왕암동 고인돌이 있다. 왕암리 유적에서는 원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건물 터, 조선 시대 토광묘, 생산 관련 유구, 수혈 유구 등 총 84기의 다양한 유구와 기와 가마터, 각 시대의 토기·도기, 청자·백자·철기·구슬 등 57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