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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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貞洙 |
영어음역 | Bak Jeongsu |
이칭/별칭 | 관여(觀汝),회당(悔堂),학림(鶴林)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관여(觀汝), 호는 회당(悔堂)·학림(鶴林).
[활동 사항]
박정수(朴貞洙)[1859~1917]는 유중교(柳重敎),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난 화서학파의 선비이다. 영월의 주천면 금마리, 단양의 석교, 제천의 청풍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장담의 선비들이 모여 처신 방법을 두고 토론할 때 유인석과 함께 망명 노선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유인석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자 중군장 안승우(安承禹)의 참모로서 참전하였으며, 제천 의병이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기는 전기가 되었던 남산 전투에서 패한 후에는 이민정(李敏政)·이풍림 등과 안승우·홍사구(洪思九) 등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제천 의병이 해산된 이후, 원용정(元容正)·정운경(鄭雲慶) 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병을 청하기도 하였다. 1905년(고종 42) 호좌의진 출신의 원용팔(元容八)이 주천에서 봉기할 때 격문을 도맡아 작성하였으며,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을 맞아 이강년(李康秊)이 봉기할 때도 종사로서 활약하였다. 만년에는 제천을 중심으로 전개된 의병 사적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저술 및 작품]
단발령 이후에 유인석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의 역사를 중군장 안승우를 중심으로 정리하여 1906년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을 편찬하였다. 1905년 주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원용팔에 관하여 『원공삼계당을사거의시말』[1906?]을 저술하였고, 1907년 재봉기한 이강년의 전투 기록인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1916년 강순희 마무리]를 정리하였다. 이러한 저술을 통해 안승우, 원용팔, 이강년 등을 중심으로 대한제국 말 제천 의병사를 정리하여 화서학파 인맥이 주도해 나갔던 호좌의진, 즉 제천 의병의 면모를 드러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