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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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敏政 |
영어음역 | Yi Minjeong |
이칭/별칭 | 사섭(士攝),택옥(澤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섭(士攝), 호는 택옥(澤玉).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후손이다. 호좌의진에서 전군장·중군장으로 활약한 안승우(安承禹)가 사위이다.
[활동 사항]
이민정(李敏政)[1845~?]은 제천의 신월리에 살던 진사로, 단발령 이후 의병 운동에 적극 나서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봉기한 호좌의진을 시종 도왔다. 의병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 유인석의 지시를 받들어 고을의 선비들과 농민, 포수들을 제천의 팔송에 소집하여 봉기를 시도하였다. 호좌의진이 충주성 공략에 나서던 때부터는 제천 수성장(守城將)에 취임하여 도망간 제천 군수 대신 사실상 지방관 구실을 하였으며, 의병을 모으고 의진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는 데 힘썼다.
제천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었던 남산 전투에서 사위 안승우가 전사하자, 박정수(朴貞洙)·이용규 등과 함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 또한 남산 전투에서 전사한 홍사구(洪思九)의 가족들이 몰락하여 떠돌아다니게 되자 이정규(李正奎)·유치삼 등과 의논하여 도와주기도 하였다.
1905년(고종 42) 유인석의 지시를 받아 이정규 등이 척사적 성격을 띤 향약을 제천에서 시행할 때도 여러 의병론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현좌면의 약정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