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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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道鳳 |
영어음역 | Im Dobong |
이칭/별칭 | 동일(東一),임도수(林道洙)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동일(東一). 족보에는 임도수(林道洙)라고 기재되었다.
[활동 사항]
임도봉(林道鳳)[1868~1896]은 제천시 수산면 도기마을에 살던 선비이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일본군에게 피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에서 봉기하였고,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에 참여하였다.
신지수(辛芝秀)가 이끌던 후군 부대의 중간 간부로서 활동하였는데, 의병진이 충주성에서 패퇴한 후 제천에 머물 때 채동집(蔡東集)·홍귀봉(洪貴鳳) 등과 함께 제천을 수비하기 위하여 충주의 독작골[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방어전을 벌였는데 충주의 광동마을[현 산척면 송강리]로부터 들어오는 일본군과 접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후대에 임도봉, 채동집, 홍귀봉을 후군 3의사라 일컫었다.
전사하였을 당시 단양에 살던 석대장 진씨가 그의 시신을 옆에 끼고 30리를 달려 운구하였다고 하며,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왜놈’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선조를 안타까이 여겨 제사 때 양과자를 쓰지 않고 과실만 사용한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