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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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風物 |
영어음역 | Pungmul |
영어의미역 | Pungmul Folk Play |
이칭/별칭 | 농악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선영 |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동제나 두렛일을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행하는 집단놀이.
[개설]
풍물은 제천 지역의 각 마을에서 꽹과리, 북, 징 등의 악기를 치기 위해 구성된 마을 놀이패가 농사일의 수고를 덜고 흥을 돋기 위하여 노는 비일상적인 민속놀이이다. 대동 화합을 위한 수단이 된 풍물은 마을의 일에 울리지 않을 때가 없다. 마을의 동제(洞祭)에서부터 지신밟기까지 풍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는 호미씻이, 백중 등의 세시에도 풍물은 마을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연원]
농악의 기원을 고대 국가의 제천 의식에서 찾기도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농악이 형성된 것에 대해 『한국세시풍속사전』의 「농악」편에서는 조선 후기 이앙법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면서일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대규모 집단 노동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의 신명을 돋우기 위한 풍물패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각종 의식이나 놀이에 두루 쓰이기 시작하면서 농악이 발전했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비록 풍물과 농악을 구분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천 지역 사람들의 풍물과 농악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풍물에 대한 기원 또한 조선 후기로 잡아도 무방하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풍물의 구성은 소리를 내는 태평소[새납], 꽹과리, 징, 북, 장구, 버꾸[소고의 일종]가 기본이 되며 마을의 기[농기(農旗)]가 반드시 포함된다. 이외에는 마을에 따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 봉양읍 마곡리의 풍물패에는 흥을 돋우는 포수와 무동이 더 있는데, 두 마을에서는 풍물을 치며 흥을 돋울 때 삼층 무동까지 서며 놀았다. 특히 마곡리에서는 삼층 무동을 한 집안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마곡 풍물은 삼대(三代)가 한다.”고 하였다.
[놀이 방법]
풍물은 노는 시기에 따라 방법이 달라진다. 동제를 올릴 때 풍물이 함께 한다면 마을에 따라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 수산면 오티리의 경우 산신제를 올리는 동안에는 절대 풍물을 치지 않으며, 별신제를 지낼 때는 풍물을 치며 신나게 논다. 또 별신제의 마지막 과정인 허재비놀이를 할 때는 포수와 신명꾼까지 등장해 더욱 신나게 논다.
정월에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해 지신을 밟을 때는 집안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풍물을 한번 치고, 부엌으로 들어가 뒤에 있는 장광 앞에서 한 번씩 치고 마당으로 돌아 나온다. 그러면 그 집에서 준비한 술을 한 잔씩 먹고, 내 놓은 쌀을 거두어 간다.
호미씻이를 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넓은 장소에서 함께 풍물을 치며 논다. 백중 때에는 면·읍이나 시에서 큰 잔치를 하기 때문에 각 마을의 풍물들이 한 장소에 모인다. 이때는 반드시 마을의 기(旗)를 가지고 나간다. 풍물을 잘 치기로 소문난 마을에서 기를 들고 나오면 인근 마을에서는 기를 숙이고 풍물 가락을 울리며 절을 한다.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만 해도 백중이 되면 제천시 한 가운데에서 줄다리기를 했는데, 이때 봉양읍 마곡리의 풍물이 나오면 다른 마을 풍물이 모두 마중을 나올 정도였다.
[현황]
지금 제천시의 풍물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적다. 수산면 오티리의 경우 제천 오티 별신제가 2001년 2월 3일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그나마 풍물이 유지되고 있지만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 이를 이어갈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