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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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鉼煥 |
영어공식명칭 | Kim Byung-hw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2월 19일 - 김병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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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3일 - 김병환 밀양 3·13 만세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4일 - 김병환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징역 6월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2021년 6월 21일 - 김병환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12월 18일 - 김병환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1월 16일 - 김병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김병환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김병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내이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밀양인민위원회 위원장|밀양청년동맹 집행위원|밀양차가인동맹 위원장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병환(金鉼煥)[1889~1947]은 1989년 2월 19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백미소매상을 운영하였고, 1919년 3월 밀양면의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윤치형(尹致衡)이 앞장서서 만든 ‘조선독립만세’ 깃발과 태극기 수십 매를 자신의 상점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징역 6월을 언도받고 부산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의열단의 의열 투쟁에 참여하였다. 의열단원 김원봉(金元鳳), 곽재기(郭在驥), 이성우(李誠宇) 등은 1920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인으로부터 구입한 폭약과 탄피로 프랑스조계 김대지(金大池)의 집에서 폭탄 3개를 만들었다. 의열단의 폭탄이 4월에 김병환에게 전달되었으나, 6월에 곽재기, 이성우, 윤세주(尹世胄) 등이 서울에서 검거되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하여 1921년 6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또 한 번 옥고를 치렀다.
1925년부터는 밀양 지역 사회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밀양청년회·밀양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신간회 밀양지회 창립위원 및 제1차 정기대회 부회장, 밀양차가인동맹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사회운동 참가 중에 의열단 활동도 병행하여 1925년 11월 경북폭탄의거 사건 관련자로 세 번째 검거되었다. 1925년 12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1926년 무렵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다. 광복 이후에 밀양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김병환은 1947년 1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묘소]
김병환의 장례는 밀양군 사회장으로 거행되었으며, 밀양에 있던 묘소를 2011년에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김병환의 공훈을 기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