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
1760년 편찬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경신판(庚辰版) 열부 이씨전(烈婦李氏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직제학(直提學) 양수생(楊首生)의 부인으로 이씨가 임신 중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의 부모는 젊어서 과부(寡婦)가 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이씨의 뜻과 상관없이 재가(再嫁)를 시키려 하였으나, 이씨는 죽음으로 항거하고 아들을 낳으매 겨우 몇 년을 지나 또 강제로 시집보내...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 이씨려(高麗直提學楊首生妻烈婦李氏閭)는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판서 권성(權晟)이 지은 「열부 숙인 이씨 묘비 음기(烈婦淑人李氏墓碑陰記)」와 운계(雲溪) 황신구(黃信龜)가 지은 「열부 숙인 이씨 정려비 음기(烈婦淑人李氏旌閭碑陰記)...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돌거북. 거북은 파충류로서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로 선사 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 사람과 집, 마을 등을 보호해 주는 「사신도(四神圖)」에도 등장하는데, 북쪽 현무(玄武)에 거북이 배치된다. 따라서 거북은 장수의 상징으로서 수호신, 보호신으로 숭배되어 왔다. 동계면의 구미리라는 마을 이름도 구미리 돌거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서호리에 있는 자연 발생 유원지.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서호리 서호 마을 앞으로 섬진강의 지류인 오수천[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동계천이라고도 부름]이 흐르는데, 오수천 한가운데에 오랜 세월 동안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약 1만 9000㎡의 자연 발생 유원지가 구송정 유원지(九松亭遊園地)이다. 수천 년 전 동계천이 생긴 이후로 동계천 중앙...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권집의 효행과 사적을 기리는 비. 권집(權潗)[1665~1716]은 본관이 안동(安東)이며, 자는 수옥(壽玉), 호는 화산(華山)이다. 초명은 권도이다. 화산이란 호는 권집이 경상도 안음[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순창 적성으로 이거하여 화산 아래서 생활하였으므로 짓게 되었다. 아버지는 권대의, 어머...
-
조선 후기 순창에서 활동한 선승(禪僧). 본관은 전주(全州). 속성은 이씨. 법호는 백파(白坡). 아버지는 이종환(李宗煥)이고 어머니는 김해 김씨이다. 긍선(亘璇)은 법명이다. 긍선[1767~1852]은 1767년(영조 43) 전라북도 무장에서 출생하였다. 12세 때 고창 선운사(禪雲寺)로 출가하여 시헌(詩憲) 장로(長老)에게 가르침을 얻은 이후, 연곡 화상(蓮谷和尙)에...
-
양경문을 시조로 하고 양사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남원 양씨(南原楊氏)는 시조 지영월군사(知寧越郡事) 양경문(楊敬文)부터 8세손까지 황해북도 개성 돌거개에서 거주하였다. 순창 지역 입향조 양사보(楊思輔)가 사마시에 합격하고 함평 현감을 지내는 등 가문을 일으킨 이래 문과 급제 8명, 무과 급제 10명, 생원과 진사 30명을 배출하였다....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미 마을 남원 양씨(南原楊氏) 종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남원 양씨 종중 문서는 교지(敎旨)·교첩(敎牒) 10건, 소지(所志) 87건, 백패(白牌) 1건, 책자(冊子) 1건 등 모두 4종 99건이다. 교지와 교첩은 양시정(楊時鼎)이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하면서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이 외 양시...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양수생의 처 이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내기로 삶터를 지켜낸 여인」은 고려 후기 삼부인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양수생(楊首生)의 처 이씨가 비홍산(飛鴻山) 아래의 길지(吉地)를 삶터로 정해 살던 중 어떤 중에게 삶터를 뺏길 위기에서 지혜와 내기로 이를 지키고, 남원 양씨의 입향조를 세워 집안을 일으키는 과정을...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심리(同心里)는 무량산 동남쪽으로 동심(同心) 마을, 추동(楸東) 마을, 아동(阿東) 마을, 오동(梧桐) 마을 4개 마을로 구성되었다. 그중 추동 마을의 본래 이름은 ‘가라울’이다. 가라울은 ‘가래골’의 음운 변화로 생긴 마을로 농기구 ‘가래’처럼 생긴 마을이란 뜻이다. 이 마을의 지세가 농기구 ‘가래’를 닮았다는 것...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수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 경명왕(景明王)[917~924]의 맏아들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고려 후기 이후 크고 작은 분파(分派)를 이루고 번성하여 현재 김씨·이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순창 지역 밀...
-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씨(姓氏)는 이미 단군 조선(檀君朝鮮)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맥(濊貊)의 군장(君長) 여수기(余守己)의 아들이 나라에 공을 세워 서성(徐姓)을 하사 받은 것에 기인한다. 이후 차차 성씨(姓氏)가 생겨 신라는 건국 초 개국에 공이...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 석산 마을에 있는 선돌. 수정리 석산 선돌은 2기로, 1984년 만수탄 천변에서 옮겨 와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 두 선돌에 대한 내력을 기록한 기념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종대왕 아들 수춘군 8세손 남평 현감 겸 나주 진관과 밀양 박봉정 두 분께서 영조 2년(1726) 불암사(佛岩寺) 종...
-
1950~1951년에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군경이 빨치산 활동 근거지인 회문산 일대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대대적으로 벌인 토벌 작전. 1948년 10월 19일 여순 사건 발발로 인하여 제14연대 전투 부대가 산으로 숨어들어 가면서 빨치산의 주력 부대가 되었다. 정부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하기 위해 1948년 10월 30일 호남 방면 전투 사령부를 설치하고 사령관에 송호성 준장을 임명...
-
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양수생(楊首生)과 순창의 관계는 양수생의 처 이씨에서 비롯된다. 이씨는 양수생이 죽은 뒤 가족들로부터 재가를 종용받자 남편의 고향인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얼마 뒤 순창으로 이주하여 아들 양사보(楊思輔)를 키워 가문을 잇게 하였다. 양사보는 조선 태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함평 현감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나라에서는 이씨에게 정려를...
-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순창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길부(吉夫), 호는 모정(慕亭). 고려 시대 대제학을 지낸 양수생(楊首生)의 후손으로 양수생의 처 이씨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홍패를 안고 개성에서 남원으로 낙향, 다시 순창으로 이주해 동계면 구미리 일대에 남원 양씨가 현재까지도 세거하게 하였다. 양희적의 아버지는 돈암공(墩庵公) 양사선(楊士選)이다...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장안리 돌탑은 마을 터의 지기를 눌러 줄 목적으로 조성해 놓은 압승형 돌탑이다. 장안리는 황씨와 이씨가 4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터를 눌렀다고 한다. 장안리는 150여 호로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주민 수가 많이 줄었다. 장안리 돌탑은 당산과 함께 마을 앞에 위치하며, 마...
-
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정시현(鄭時賢)[1598~1685]은 1598년(선조 31) 출생하였는데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늙어 이가 다 빠지자 정시현은 부인 이씨를 시켜 젖을 드리도록 하였는데, 노망이 든 아버지가 이따금 며느리더러 어머니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이 60세에 부모의 상을 당하자 죽만 먹으면서 삼년상을 치렀다. 고을 사또 윤종지(尹...
-
조선 시대 순창 지역의 열녀. 신해년(辛亥年)에 순창에 큰 흉년이 들었는데, 열녀 이씨의 남편 한몽인(韓夢寅)은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게 되자 이를 부끄럽게 여겨 늘 독약인 비상을 주머니에 간직하고 다녔다. 한몽인이 부인 이씨와 결별(訣別)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욕(辱)을 보고 살아서 무엇하리요. 차라리 이것을 먹고 죽으리라.” 하고 비상을 나누어 갖고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