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지산리에서 노동리로 넘나드는 고개. 옛날 순창에 아들과 개 한 마리를 키우며 사는 부부가 있었다. 장인의 회갑이 되어 적성면의 처갓집에 개를 데리고 가다가 고개 능선에서 강도를 만나 싸우던 중 개가 강도와 함께 죽고 말았다. 남편은 강도 편을 들었던 부인을 처가에 버려두고 고개를 돌아오면서 죽은 개의 비를 세워 주었는데 그 비를 견두비(犬頭碑)라...
-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기독교는 크게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 두 개의 종파로 나눌 수 있으며,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였다. 그 후 로마 제국의 국교로 뿌리내리면서 전 유럽에 전파되었다. 기독교가 종교의 기능을 망각하고 타락해 갈 즈음 1517년에 일어난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 개혁...
-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 개항기는 일반적으로 1876년(고종 13) 개항부터 1910년 국권 피탈 이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조선은 1876년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각국과 통상 조약을 맺어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외국의 근대 문물이 유입되고 조선도 위로부터 새로운 근대 문물의 수용과 근대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경주 설씨 문중의 삼절과 사현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경주 설씨 삼절 사현 유허비(慶州偰氏三節四賢遺墟碑)는 경주 설씨의 삼절 사현(三節四賢)을 기록한 비석이다. 경주 설씨는 회골계(回鶻系)[위구르족]의 귀화 성씨이다. 원나라에서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설손(偰遜)이 난을 피해 1358년(공민왕 7) 고려에...
-
정유재란 당시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광덕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광덕산(廣德山)은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청계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경계에 있는 해발 540m 산으로, 담양의 금성산성과 이어져 있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일본군이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고, 일부 부대는 두...
-
전라북도 순창군을 거쳐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을 연결하는 고속 도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고속국도 12호선의 일부]는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4차선의 고속 도로이다. 광주 대구 고속 도로 중 순창군 지역 통과 노선은 금과면[장장리~남계리~방축리~고례리], 팔덕면[덕천리], 순창읍[백산리~교성리~가남리], 유등면[창신리~건곡리~외이리...
-
전라북도 순창군의 주요 도로와 교통 관련 시설 및 교통수단. 고려 시대에 전북 지역을 통과하는 주요 도로는 3개였고, 역참은 61개가 존재했다. 이 중 전공주도는 삼례역[완주군]에서 정읍 서부 지역을 지나는 도로였고, 산남도는 전주 반석역에서 진안~거창~진주~거제를 연결하는 도로였으며, 남원도는 오수역[임실군]~남원~구례~순천을 연결하는 도로였다. 이 시대에 순창 지역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 있는 금과면 담당 행정 기관. 금과면사무소는 순창군 11개 읍·면 중의 하나인 금과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금과면은 금동면과 목과면이 1914년 지방 조직 개편으로 통합되면서 금과면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과면사무소의 주요 업무는 총무 담...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면 소속으로 국화(菊花) 마을·황학(黃鶴) 마을·창평(昌平) 마을·금상(金箱) 마을 등 4개 마을을 묶고 금상의 ‘금’ 자와 창평의 ‘창’ 자를 합쳐 금창리(金昌里)로 개편하였다. 자연 마을인 황계 마을은 누런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황계포란(黃鷄抱卵) 형상이어서 황계촌(黃鷄村)으로도 부른다. 황계촌 뒤 골짜기에 있는...
-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법관이자 정치가.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가인(佳人).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학수, 아버지는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낸 김상희(金相熙)이다. 어머니는 장흥 고씨(長興髙氏)이다. 처는 연일 정씨(延日 鄭氏) 정교원의 딸이다. 자식은 3남 1녀로 장남 김재중, 장녀 김순남, 차남 김재열, 삼남 김재옥이다. 1....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치옥(穉玉), 호는 성암(省庵).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경재(警齋) 김정수(金正洙)이다. 김상기(金相璣)는 1855년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최익현(崔益鉉) 부대도...
-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관료.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지산(芝山), 본명은 김대희(金大熙), 일본식 이름은 금전영무(金田英武). 아버지는 광양 군수(光陽郡守) 김우근(金宇根)인데, 큰아버지인 참봉(參奉) 김택근(金澤根)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김영무(金英武)[1891~1953]는 1891년 10월 20일...
-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의병장. 본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할아버지는 주부 김윤손(金潤孫)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며, 어머니는 양성 이씨(陽城李氏) 부위(副尉) 이감(李瑊)의 딸이다. 아들은 김상건(金象乾)이다. 김천일(金千鎰)[1537~1593]은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부모를...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계리(南溪里)는 남계 마을과 호치(虎峙)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400여 년 전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처음 터를 잡고 살다가 집안이 몰락하여 이사하고, 그 후 유신곤(柳晨坤)이란 사람이 인근 호치 마을에서 거주하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남계 다리 앞 서당재 밑에 동산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
윤위를 시조로 하고 윤시양(尹時亮)과 윤인노(尹仁老)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의 세거 성씨. 남원 윤씨(南原尹氏)는 고려 신종조의 명신 윤위(尹威)[1158~?, 자는 언숙(彦肅), 호는 벽송 거사(碧松居士)]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원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남원 윤씨가 순창과 인연을 가진 첫 번째 일은 문효공 윤효손(尹孝孫)의 부친인 윤...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답동리에 속하는 마을 중 비석거리는 마을 주변에 공적비가 많아 붙여졌다. 지금은 비석 하나만 남아 있다. 농곡 마을은 논이 많은 골짜기라는 의미로 논골, 농곡 등으로 불렀다. 그 후 변음이 되어 농골이라고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농곡(農谷)이 되었다. 답동리 지역은 삼한 시대 마한 땅이었으며, 백제 때는...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방리(大榜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갈현리(葛峴里), 용지리(龍池里), 일운리(日雲里), 금방동(錦榜洞)을 합한 후 금방동의 ‘방(榜)’ 자는 따왔으나 앞 글자 ‘대(大)’는 어디에서 따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는 갈현이 갈원이 되고 용지와 금방동은 그대로이며, 일운리는 사라지고 없다. 대방리 마을...
-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을 통과하는 고속 도로, 국도, 지방도, 군도 등 사람, 차 따위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 순창군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는 광주 대구 고속 도로[고속 국도 12호선]와 국도 5개[27호선, 13호선, 21호선, 24호선, 29호선], 지방도 9개[국가 지원 지방도 49호선, 55호선, 지방도 715호선, 지방도 717호선, 729...
-
1894년 전라북도 순창군을 포함하여 삼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동학(東學)이란 서학(西學)에 맞서는 종교로 1860년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은 1894년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으로, 사관에 따라 동학란, 동학 농민 운동, 갑오 농민 항쟁 등으로 불리다가 2004년 「동학 농민 혁명 참여자 명예 회...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 음식인 떡을 3대째 만들어 파는 가게. 한국의 전통 음식 가운데 떡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명절이나 생일잔치 등 특별한 날에만 먹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요즘은 아무 때나 즐기는 전통 음식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떡이 건강에 좋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빵이나 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반월리 자포 마을에 있는 선돌. 담양 가는 길 꾀꼬리재 너머로 화산이 있는데, 이 화산이 반월리 자포 마을에 비친다. 또한 주평리 뒤쪽에 심적산이 있는데, 그 산의 바위가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을 발하며 마을을 비추면 여자들 사이에 음풍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마을에 음풍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돌을 세워 화기를...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와 하리, 쌍치면 둔전리의 경계인 백방산에 있는 계곡. 계곡은 일반적으로 산지 사이에 하천이 침식 작용을 깊이 진행시켜 만든 V자 모양의 골짜기이다. 계곡은 풍광이 좋고 물이 맑고 차가워 통상 여름철 휴양지로 많이 찾는 곳이다. 백방산 계곡은 순창군 복흥면과 쌍치면 경계의 백방산(栢芳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백방...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정산리에 있는 개신교 교회. 순창에 처음 개신교가 전래된 것은, 1897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에서 전라남도 지방의 중심지 나주에 선교부를 신설하고 선교 활동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1904년에 광주 선교부를 개설하고 오원과 배유지 선교사가 순창에 정착하여 담양과 순창을 오가면서 교회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순창에 처음 설립된 교...
-
1908년 6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에서 의병장 신보현 부대가 일본군과 벌인 전투. 일제는 조선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 의병들을 먼저 소탕하고자 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의병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일본군은 크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의병 활동은 시기적으로 볼 때 1895년의 을미 의병, 1905년의 을사 의병, 1907년의 정미 의병으로 나누어지는데 뒤...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서 근대에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들의 활동. 한말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순창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 출신지를 보면, 복흥과 쌍치, 구림 등 산악 지대 출신들이 많다. 의병들이 대체로 소규모로 유격전을 많이 했고, 그러다보니 산악 지대가 의병의 이동 통로 내지는 근거지가 되는 경우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사창. 고구려 진대법(賑貸法), 고려 시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를 이어받아 조선 시대에 발전시킨 것이 사창 제도(社倉制度)이다. 사창제는 1451년(문종 1) 처음 시행된 뒤 1461년(세조 7)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점차 고리대 기관으로 전락하고 관리 소홀로 사창 원곡이 감소하자 1470년(성종 1) 혁파되었다. 사창제는 1866년(고종...
-
전라북도 순창군에 분포하고 있는 주변의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순창 지역의 산줄기를 1769년(영조 45)에 편찬된 전통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에 따라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백두 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나뉜 금남 호남 정맥 장수 팔공산 부근에서 분기된 지맥의 마령치에서 남진하는 풍악산 산줄기와 임실 성수산으로 뻗어 가는...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금과면 청용리와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경계에 있는 산. 멀리서 보면 하얀 눈이 쌓인 것처럼 정상 부분이 하얗게 빛나 설산(雪山)이라고 부른다. 설산 남쪽 산자락에 고승 설두 화상이 수도했던 수도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부처님이 수도를 한 여덟 개의 설산 가운데 하나여서 설산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설산은 순창군 남쪽 끝자락...
-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씨(姓氏)는 이미 단군 조선(檀君朝鮮)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맥(濊貊)의 군장(君長) 여수기(余守己)의 아들이 나라에 공을 세워 서성(徐姓)을 하사 받은 것에 기인한다. 이후 차차 성씨(姓氏)가 생겨 신라는 건국 초 개국에 공이...
-
1950~1951년에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군경이 빨치산 활동 근거지인 회문산 일대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대대적으로 벌인 토벌 작전. 1948년 10월 19일 여순 사건 발발로 인하여 제14연대 전투 부대가 산으로 숨어들어 가면서 빨치산의 주력 부대가 되었다. 정부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하기 위해 1948년 10월 30일 호남 방면 전투 사령부를 설치하고 사령관에 송호성 준장을 임명...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있는 가축 시장. 1920년대의 순창 우시장(淳昌牛市場)은 5,000두 이상 1만 두 미만의 소가 거래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였다. 당시 전라북도 지역에서 이 정도의 거래가 이루어진 우시장은 전주, 금산, 순창, 익산 네 곳 정도였다. 순창 우시장은 순창읍 남계리 사정 마을의 2,640㎡ 대지에 개설되었다. 언제 개설되었는지...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쌍암리에 있는 건강, 장수 관련 전문 연구 시설. 순창군 건강 장수 연구소는 국민 행복 100세 시대에 대응하여 건강과 장수를 모태로 한 다양한 정책 발굴과 연구 개발을 통해 지역의 경쟁력 확보 및 순창군 브랜드 확대를 위해 건립되었다. 2002년 조선 일보사와 서울 대학교가 순창을 전국 제1의 장수 고을로 선정하였다. 2003년 순창군...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는 시외버스 및 군내 버스 터미널. 순창군 공용 버스 정류장은 1980년대에 지어진 이래 2009년 1월 리모델링 공사를 완공했다. 승하차장, 대합실, 매표소, 화장실, 매점 등이 갖추어져 있다. 순창군 공용 버스 정류장은 금호 아시아나 그룹의 금호 터미널이 소유하고 있다. 하루 평균 200여 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가장 큰 명절이 단오절이다. 단오은 음력 5월 5일로 양수가 겹치는 날이다. 양수가 겹치니 양기(陽氣)가 두 배로 충전되는 날이다. 그래서 단오절을 단양절(端陽節)이라 하였다. 전통적으로 양수가 겹치는 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들로 나가 놀기를 즐겨 하였다. 삼월 삼짓날[음력 3월 3일], 오월 오일날[음력 5월 5일], 칠월 칠석날[음력 7월 7일],...
-
호남을 대표하는 호남정맥의 줄기에 위치한 순창군은 대부분이 산간지로 서쪽으로 회문산, 북쪽으로 강천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과 남쪽으로는 섬진강과 적성강 등 크고 작은 하천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순창 지역은 판소리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간직한 고장이다. 판소리를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로 구분하는 기준이 섬진강인데, 순창은 바로 이...
-
삼해주(三亥酒)는 내력이 깊은 술로 옛 문헌에 자주 나온다. 우선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가 1168년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등장한다. 또 조선 시대 문헌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산림경제(山林經濟)』,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도 등장한다. 20세기 초까지 술도가가 밀집해 있던 한강가 마포 나루 부근의 공덕동과 아현동에서 많이 빚어지던 술이 삼...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에 있는 순창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음식점. 우리나라 중국집의 성쇠는 한국 화교의 몰락과 궤를 같이 한다. 6·25 전쟁 후 얼마 남지 않은 화교는 재산권 행사의 제약으로 큰 사업을 할 수 없어 작은 식당을 열고 서민 상대의 음식을 팔았다. 가격이 싼 국수가 주요 메뉴였으며, 이 국수에 춘장을 볶아 얹은 게 자장면이다. 2013년 현재 한국...
-
개항기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한 의병장. 신보현은 신보현(申保玄), 신보현(申寶鉉)으로 한자를 달리 쓰기도 하고, 신창학(申昌學)으로도 불렸다.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신보현(申甫鉉)[1868~?]은 1868년 출생하였고, 1907년부터 의병을 모아서 왜적과 유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1909년 4월 일본 경찰 보고에 의하면 신보현 의병대...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심적 마을에 있는 산. 심적산(深寂山)은 복흥면 대방리 심적 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한국 지명 총람』의 기록에 따르면 1914년 행정 통폐합 이전에는 심적리가 있었으나 대방리에 편입되었다. 이제 그 이름조차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다. 산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고 고요한 산이라는 의미로...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양신리에서 구림면 운북리를 잇는 고개. 순창 읍내에서 쌍치면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위치한다 하여 쌍치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도 21호선이 지나는 순창군 쌍치면 양신리와 구림면 운북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북위 35°28′06″, 동경 127°02′03″에 위치하고 있다. 쌍치 주변은 북쪽의 세자봉과 남쪽의 담양 용추봉이 이어지...
-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으로 조선 지리학의 황금기였던 18세기 후반에 영조의 명을 받아 조선의 지도 제작사에서 매우 중요한 방안 지도인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제작하였다. 또한 순창의 신경준가(申景濬家) 후손 집안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강화 이북 해역도(江華以北海域圖)」와 「북방 강역도(北方疆域圖)」...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누정. 영광정은 순창군 쌍치면 소재지에서 시산 마을을 지나 정읍 방향으로 따라가다 둔전교 못 미쳐 기룡암(騎龍巖) 위 냇가에 위치하고 있다. 기룡암에는 용의 발톱 자국이 남아 있다 하여 용암(龍巖)이라고도 부른다.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하자 당시 순창에 살고 있던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1860~...
-
조선 초기 문신이자 뛰어난 학자였던 서거정(徐居正)[1422~1488]은 순창을 일러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순창은 호남의 승지로 산수가 아름답고 논밭이 풍요로우며, 물가의 어장 또한 넉넉한 곳이다[淳(昌郡) 湖南之勝地 有山水之樂 土田之饒 禽魚之富].” 한글 학회에서 펴낸 『한국 지명 총람』은 순창의 명당을 30여 곳 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거의 각 마을마다 명당 하나씩을...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이현구 처 옥천 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개항기에 세운 정려비와 비각. 옥천 조씨(玉川趙氏)는 옥천 부원군(玉川府院君) 조원길(趙元吉)의 후손이다. 남편 이현구(李炫龜)가 고질병이 있어 백방으로 조치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늘이 내린 명이 이뿐인가 하고는 집안사람들에게 울면서 말하기를 “아들 생산도 못해 받들고 의탁할 곳이...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와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경계에 있는 산. 옥출산(玉出山)은 예전에 옥이 많이 생산되어 붙은 이름으로, 이 고장을 흐르는 물은 옥천(玉川)이라 한다. 이 산에서 생산된 옥은 궁중에 진상되었고, 일본과 중국 등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또 옥을 지키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옥출산의 옥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에서 노사 기정진의 할머니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은 순창이 배출한 대유학자이다. 「외눈박이 손자의 명당 발복」은 노사 선생의 할아버지가 훌륭한 자손을 얻기 위해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이라는 명당을 찾아 노사의 할머니 묘를 썼는데, 후에 태어난 소년 노사가 한쪽 눈을...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우곡리 마을 회관 옆에 있는 석인상. 일반적으로 석장승과 석인상, 미륵불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석장승은 돌로 만든 인형상이면서 몸체에 대장군 또는 장군 명의 명문이 있어야 하고, 인형상은 매우 험악하고 무서운 얼굴상의 모습이다. 그런데 석장승과 석인상을 화강암으로 조각하다 보니 무서운 얼굴상보다는 인자한 할아버지가 웃는 얼굴상으로 희화화하는 경...
-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의 숙박 시설.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길목에 설치된 편의 시설이다. 원과 역(驛)은 같은 장소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역과 원을 합해 역원(驛院)이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시대 전국에는 모두 1,310개의 원이 있었으며 경상도 468개, 전라도 24...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의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26세 때인 1916년에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닫고 창립하였다. 소태산 박중빈은 이재철·이순순·김기천·오창건·박세철·박동국·유건·김광선·송규 등과 근검저축·허례 폐지·미신 타파·금주 단연·공동 출역 등의 새 생활 운동인 저축 조합 운동...
-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던 창고. 『대동지지(大東地志)』 창고조에 “창(倉)이 5개인데 모두 군내에 있다. 성창(城倉)은 서쪽 30리[약 11.78㎞] 담양 금성 산성에 있고, 사창(社倉)은 서쪽 50리[약 19.64㎞] 상치등면에 있다[倉五(皆郡內) 城倉(西三十里潭陽金城山城) 社倉(西五十里上置等面)]”라고 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순창군 창고조...
-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국가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민병. 박은식(朴殷植)은 『한국 통사(韓國痛史)』에서 의병이란 ‘민군으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라 정의 내렸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부대이기에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의병이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나라가 위...
-
조선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시인.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이행(李荇), 할아버지는 이원정(李元禎), 아버지는 진사 이형(李泂)이다.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대호군(大護軍) 이양(李崵)의 딸이다. 재종숙부인 사헌부 감찰 이필(李泌)의 양자가 되었다.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종숙(從叔)이다. 이안눌(李安...
-
1592년~1598년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일본군은 각지의 의병과 명나라 지원군, 또 이순신(李舜臣)에 의한 해로 통제 등으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듬해 4월부터 조선과 화의가 오가게 되다가 6월 일본군은 철수를 하였다. 그러나 15...
-
2003년 순창군에서 조성한 동학 농민 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어 압송된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피노 마을에서 구림면 금창리 금상 마을까지의 길. 전주성을 점령하고 기세를 올리던 동학군은 조선 정부가 청에 군대를 요청하고 이에 일본군까지 따라 조선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일본은 청을 공격하여 청일 전쟁을 일으키고 예상을 뒤엎고 전쟁에...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운 전적지라 해서 전야리(戰野里)라고 불렀다. 도보 교통 시대에 전암리는 현 쌍귀선(雙龜線)의 밤재를 넘어 순창, 구례, 곡성으로 평야 지대의 쌀과 서해안의 어염을 운반하던 보부상의 행로였다. 또 담양, 광주 등지에서 치재를 넘어 저부제, 점배미[田岩], 피노, 산내, 전주로 통하는 요충지였다....
-
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의 훈몽재에서 강학한 유학자.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 초명은 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佶). 아버지는 전재성(田在聖)이다. 전우(田愚)[1841~1922]는 1841년(헌종 7)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살았다. 이때 당대의 유학자 임헌회(任憲晦)[18...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산리(鼎山里)는 정동 마을의 ‘정’자와 계산 마을의 ‘산’자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이 우리 땅의 지기(地氣)를 없애려고 많은 지역의 지명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정산리도 그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정동 마을은 후룡 서쪽 1㎞ 지점에 ‘천마입구(天馬入口)’라는 혈이 있다고 하며, 마을 뒷산 혈이 솥...
-
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득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제주 고씨 입향조는 문충공파(文忠公派) 고경(高慶)의 후예인 고득우(高得雨)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0만 954가구, 32만 5950명이...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창덕리(昌德里)는 조선 후기 정유재란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때 임진왜란 당시 창의 대장의 아들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오원(金五元)이 전라남도 담양에서 가족을 잃고 피난을 와 터를 잡고 가정을 이루어 두 아들을 대문호로 성장시켰다 한다. 1835년경 마을 입구 동각을 수리할 때 벽장 속에서 「효례동 실기」가 발견되었...
-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창신리에 있던 교통·통신을 담당한 역. 역은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 등 다양하게 불리며 중국의 역전 제도(驛傳制度)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된다. 역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에서 우역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 시대부터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의 역제를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각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월계리 경계에 있는 산. 추월산(秋月山)은 가을의 보름달이 산에 닿을 것같이 드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호남의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추월산 암봉 아래에는 단풍나무가 매우 많아 가을이면 이 풍경을 감상하러온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룬다. 그리고 가을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
-
순창은 맑고[淳] 창성[昌]한 땅이다. 순창은 예로부터 옥천(玉川)·순화(淳化) 등으로 불릴 만큼 물이 맑고 순박하며, 절경이 많고 인심이 후덕하여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순창은 전라북도 동남부 산간 분지에 속하지만, 예로부터 풍부한 농경 생산 덕택에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알려졌다. ‘생거순남(生居淳南) 사거임실(死...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있는 유원지. 향가 유원지(香佳遊園地)는 섬진강의 중간 지점으로 강물이 산자락을 휘감고 도는 곳에 있다. 물줄기를 안고 있는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예부터 시인 묵객과 한량들이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향가(香佳)’라는 명칭은 섬진강의 물을 향기로운 물이라고 하고, 강 옆의 산인 옥출산(玉出山)을 ‘가산(佳山)’이라고도...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임실군 강진면 회진리 경계에 있는 산. 회문산에는 바위로 된 천연의 문이 있어 ‘회문(回文)’을 ‘회문(回門)’으로 쓰기도 한다. 예부터 회문산은 영산으로 이름났는데,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그 산에서 도통하여 『회문산가(回文山歌)』 24혈(穴)의 명당 책자를 만들었다. 이 책에는 회문산 정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