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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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두 아내와 선달벼슬을 얻은 이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선시대에 무과 출신이면서 임관되지 못하고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선달이라는 호칭이 붙여지게 되었는데, 「두 아내와 선달벼슬을 얻은 이씨」는 변변치 못한 사람이지만 그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선달벼슬이라도 하게 하여 명문가를 이루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벼고을농경문화테마파크[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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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金山寺)를 배경으로 후삼국시대 태조 왕건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극. 전라북도를 비롯한 호남 지역민들은 그다지 왕건(王建)을 좋아하지 않는다. 견훤이 도읍지로 삼았던 것과도 유관한데, 이유는 왕건이 이를 빌미로 ‘차현(車峴) 이남의 금강(錦江) 밖은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호남 인재 등용을 막은 ‘훈요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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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를 시조로 하고, 함흥달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강릉함씨(江陵咸氏)의 시조인 함규(咸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으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태위(太尉)에 책록되었으며, 벼슬이 광평시랑평장사(廣評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함씨가 강릉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함규의 후손 함제(咸濟)가 강릉에 세거하게 된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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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건축이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다. 김제시의 건축 유구(遺構)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의 특징에 걸맞게 삼국시대 축조된 수리 시설부터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유적이 벽골제이다. 이후 금산사가 창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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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암서원(龜巖書院)에서 주벽으로 모시는 사가(四佳) 황거중(黃居中)의 신도비문에 의하면, 황거중은 우주황씨로 자는 경덕(敬德)이다. 고려 말기 관직에 있으면서 경학을 통해 도를 이루는 데 힘썼다. 조선 왕조 창업에 동참하여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개국 공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다. 이때 황거중은 유학을 진작시키고자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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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서를 시조로 하고, 김정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김제김씨(金堤金氏)의 시조는 김알지의 후손이자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천서(金天瑞)로, 고려시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다. 김천서가 김제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은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우고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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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벽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光胤)의 후예라 전해오고 있으나 고증할 수 없고, 실제로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고 있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공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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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향교의 설립 목적은 성현에 대한 향사와 유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침에 있으며 아울러 지방 문화 향상 및 사기 진작 등 사회교육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태조는 지방 재정에 의해 설치된 지방 향교의 흥패(興敗)를 수령들의 치적 평가 척도로 삼는 적극적인 정책을 취함으로써 향교 보급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향교는 조선 중엽까지 성황을 이루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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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김춘의 정려. 김춘(金春)의 본관은 안동이다. 김춘의 이름은 원래 참죽나무 ‘춘(椿)’자인데, 태조 이성계의 조부 이름이 이춘(李椿)이라 어휘(御諱)에 저촉된다 해서 비석을 세울 때는 봄 ‘춘(春)’자로 새겨 넣었다. 5세 때 모친상을 당했고 9세 때 부친상을 당했다. 모친상 때는 너무 어려서 상주 노릇을 못 했다. 부친상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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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증조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할아버지는 나석(羅碩)이다. 아버지는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우의정을 제수하고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 낙천와(樂天窩) 나중우(羅仲佑)이다. 1419년(세종 1) 기해 식년시 병과에 5위로 급제하였다. 1420년(세종 2) 권지저작(權知著作)으로 통사랑봉상시녹사(通仕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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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나주나씨 동성마을. 나주나씨(羅州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한나라 초에 예장(豫章)으로 옮겨 예장나씨가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나주]에 정착하고 고려조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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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주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남양홍씨(南陽洪氏)의 선시조는 8학사(八學士) 중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 때 당나라에서 건너온 홍천하(洪天河)이다. 선시조 학사공 이후의 계대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을 세우고 고려 개국 일등공신이자 삼중대광태사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입향 경위와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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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속하는 법정리. 만경읍 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므로 대동리(大東里)라 하였다. 1460년경(세조 6) 전주이씨 이희금(李希琴)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희금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형인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증손으로, 1453년(단종 1) 일숙(壹叔)인 좌찬성 이양(李禳)이 3명의 재상들과 함께 순절하고[공주 동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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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두곡서원(杜谷書院)은 성리학자 강원기(康元紀)[1423~1498]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배향되어 있는 사람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봉호당 문헌공 강원기, 난계 성전림(成傳霖) 등이다.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유풍(儒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그가 경원과 은성 두 고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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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부터 757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청하면·진봉면·공덕면·성덕면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백제 초기에는 지방 통치가 지역 부족 수장들의 자치적 기능에 맡겨져 왔다. 고이왕 이후에 5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그들이 점차 중앙 귀족화되어 부에 편입되었고, 지방 통치가 이들을 통한 간접적인 지배 형태로 행해지면서 두내산현(豆乃山縣)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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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4세기 말로서,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부족 연맹체를 벗어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 국가로 도약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 종래의 씨족 중심적 세계관과 종교관을 대체하는 보편적 윤리와 이념을 제공하였다. 고구려의 불교는 372년(소수림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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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봉성온씨 문중의 사당. 수신재(守愼齋) 온신(溫信)은 1366년(공민왕 15) 신돈(莘旽)의 농정을 극간하다 벼슬이 강등되어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 살게 되었다. 운림(雲林) 온림(溫琳)은 온신의 아들로 공양왕 때 좌랑을 지냈으며 고려 말기 두문동에 들어가 태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채 봉림동에 숨어 살며 스스로 운림한사(雲林寒士)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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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에 있는 애국지사 장태수의 사당. 서강사(西岡祠)는 금구면사무소에서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방향으로 1㎞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935년 일제강점기에 인동장씨가 중심이 되어 대한제국 말기 일제 침략에 반대하여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세상을 떠난 일유재 장태수(張泰秀)[1841~1910]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당시 일제가 장태수를 으뜸 위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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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세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선산김씨(善山金氏)는 문성왕 8세손 김선궁(金宣弓)을 시조로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일선(一善)[지금의 선산]에 이르러 모병(募兵)하였는데, 문성왕 8세손이 종군할 것을 희망하니 왕건이 크게 기뻐하여 친히 어궁(御弓)을 하사하고 ‘선궁(宣弓)’이라 사명했다. 김선궁은 그로부터 왕건을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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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의 뒤를 이어 935~936년까지 재위한 전라북도 김제 지역 후백제의 왕.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의 맏아들로, 동생은 양검(良劍)·용검(龍劍)·금강(金剛)이다. 신검(神劍)은 아버지인 견훤이 넷째 아들인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935년 3월에 이찬(伊飡) 능환(能奐) 및 동생인 양검·용검의 권유를 받아들여 반란을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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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고려시대 목장 터. 조선 후기 대동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고을마다 집집마다 일정한 양의 특산물을 조정에 납부하는 공납제가 시행되었다. 이러한 공납제는 지역적인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여 조정과 왕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조달한다는 목적 아래 시행되었으나, 이를 납부해야 하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토지세나 인력세보다 부담이 커서 고향을 떠나는 경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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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수리 시설인 벽골제(碧骨堤)는 노령산맥(蘆嶺山脈)의 중봉인 모악산(母岳山)·구성산(九城山)·상두산(象頭山) 등에서 발원한 풍부한 물이 흘러 이루어진 원평천(院坪川)·두월천(斗月川)·감곡천(甘谷川)·금구천(金溝川)·신복천·오주천의 물을 모았다가, 금만평야를 비롯하여 정읍과 부안군 일부 지역 농지에 농업용수로 공급하였다. 오늘날의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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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보를 시조로 하고, 황응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우주황씨(紆州黃氏)의 시조는 고려시대 중윤공(中尹公)으로 추봉되었던 황민보(黃旻甫)이다. 시조의 10세손 문숙공(文肅公) 황거중(黃居中)은 태조를 도와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어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우주(紆州)를 본관으로 정한 것은 황거중이 우주에 낙향, 그곳에 세거하였기 때문인데 우주는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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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을 시조로 하고, 김주학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인 김석(金錫)이다. 김석이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의성(義城)을 본관으로 삼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했다. 입향조 김주학(金柱學)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다. 26세손 김기렴(金寄濂)이 충청남도 보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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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설명하는 이론. 풍수는 산천(山川)·수로[水流]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학설로, 이를 체계화한 것이 바로 풍수지리 사상, 풍수설, 풍수지리설 등으로 정착되었다. 즉 풍수지리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이다. 풍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