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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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宜常 |
영어음역 | Im Uisang |
이칭/별칭 | 경보(敬甫),신당(愼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5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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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4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호좌의진 종군 |
[정의]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보(敬甫), 호는 신당(愼堂). 아들로 임병필이 있다.
[활동 사항]
임의상(林宜常)[1854~?]은 제천군 길고개[현 제천시 왕암동]에 살았다. 이소응(李昭應)이 주도하는 장담 강회에 출입하며 의병론자들과 뜻을 같이하였고, 1904년(고종 41) 말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제천 향약에 적극 참여하여 서면의 직월(直月)을 맡았다.
이강년(李康秊)이 재기한 후에는 아들 임병필과 함께 종군하면서 서울에서 온 기술자를 고용하여 탄약을 제조하였으며, 1908년(순종 2) 여름 이강년이 체포된 후 유기백(劉基伯) 등과 함께 재기를 꾀하며 격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