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던 대화교 포교당. 대화교(大華敎)는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시한 종교이다. 손은석은 서울에서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여 제우교(濟愚敎)라는 종교를 만들어 포교를 시작하였다가, 1920년 교명을 용화교(龍華敎)라고 바꾸었다. 뒤를 이은 윤경중(尹敬重)은 불교성을 가미, 교명을 대화교라 고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다. 윤경중은 원래 강경...
-
동곡약방 으로 들어서면 바닥에는 강증산[1871~1909년. 본명 강일순. 증산교의 창시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옥(士玉)]이 사용하던 넓은 석판이 있고, 왼쪽 방향으로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의 물은 옛 방식 그대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다. 지금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 우물의 물을 ‘성스러운 물’이라 여기면서 먹을 만큼 물맛이 아주 좋다. 그 옆에는 지금...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외세에 반대하고 탐관오리를 축출하기 위해 동학 남접(南接)의 주도 하에 진행된 집회. 개항과 더불어 농촌 경제가 점점 파탄 지경에 달했고, 지방관과 토호들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한편 동학의 교조인 최제우(崔濟愚)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명으로 처형당하고, 동학교도들은 정부의 탄압으로 매우 힘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최제우 사후 최시형이 교단을...
-
1894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에 기초를 둔 반봉건·반외세 농민항쟁. 19세기는 순조·헌종·철종 등 어린 왕들이 연이어 즉위하면서 외척 세력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세도정치의 시기였다. 그로 인하여 중앙 정치는 문란해지고, 탐관오리는 백성들을 핍박했으며, 전정·군정·환곡 등의 폐단으로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경주 출신의 몰락 양반 최제우(崔濟愚)가...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 단체. 모악교(母岳敎)는 증산교에서 갈라져 나온 신종교로 신앙 대상은 원래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姜甑山)이었지만, 모악교를 창시한 여원월(余圓月)이 사망한 이후에는 여원월도 함께 받들고 있다. 또한 단군과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崔濟愚)의 신위도 모시고 있다. 강증산은 개벽주(開闢主)·미륵불(彌勒佛)·옥황상제(玉皇上帝)·증천상제(甑天上帝)...
-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모악산(母岳山)은 충청남도에 있는 계룡산(鷄龍山) 버금가는 신흥종교의 발생지요 온상지이다. 이강오의 『한국신흥종교총람(韓國新興宗敎總攬)』에 따르면, 계룡산에 있는 신흥 교단은 한국의 신흥종교를 13계통으로 분류할 때 30여 교단 정도이지만 신계계(晨鷄系)와 외래계(外來系)를 제외한 11계통이 골고루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전라북도 모악산과 김제시 금산면,...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흥 종교란 기존의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 외에 190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 탄생된 종교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제 지역에서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1860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시된 천도교를 비롯하여 강증산(姜甑山)[1871~1909]의 증산교, 박중빈(朴重彬)[1891~1943]의 원불교와...
-
개벽(開闢)이란 두 글자 모두 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늘이 열린다는 뜻의 ‘열 개(開)’자와 땅이 깨어난다는 뜻의 ‘열 벽(闢)’자가 합쳐져서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벽(開闢)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상극 관계가 상생 관계로 전화되는 새로운 순간을 ‘개벽’이라고 불렀다. 개벽은 공간과 시간을 새롭게 하는...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김제 지역은 백제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고려 말 유교 도래 이후 일찍이 근대 시기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래되었다. 또한 자세한 통계는 없으나 한때는 계룡산보다도 신종교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로 모악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종교가 성행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김제 지역 불교에 중대한...
-
1905년 교조 손병희(孫秉熙)가 동학을 계승하여 개칭한 종교. 동학은 1860년 경상북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그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구제해 내겠다는 결심으로 이름을 제선(濟宣)에서 제우로 고치고 호를 수운(水雲)이라 하였다. 당시의 정계는 외적의 침입으로 국권이 침탈되는 위기에 직면했으며, 종교계는 유불선(儒彿仙) 등 기성 종교가 부패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