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71
한자 聖-神學校
이칭/별칭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구관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12길 47[남산동 21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성유스티노신학교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2월 15일연표보기 - 성유스티노신학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6월 29일 - 성유스티노신학교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구관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12길 47[남산동 219]지도보기
원소재지 성유스티노신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12길 47[남산동 219]
성격 건물
양식 벽돌조|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혼합
측면 칸수 521.64㎡[건축면적]|895.77㎡[연면적]
관리자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대구 최초로 지어진 가톨릭교회의 신학교.

[개설]

성유스티노신학교천주교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드망즈(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사제 양성을 위하여 대구 지역 최초로 지은 신학교이다.

드망즈 주교는 세계 각 지역에 한국인 사제 양성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호소하였다. 1913년 9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익명의 신자가 신학교에 ‘성 유스티노’를 모시는 조건으로 2만 5000프랑의 헌금을 보내 오고, 신도인 서상돈(徐相敦)이 땅을 기증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1913년에 신학교 기초공사를 시작하였다. 목수는 프랑스 영사관 건축에 참여한 사람이 하였고, 공사는 중국인 기술자가 진행하였다고 한다.

1913년 7월 19일 샤르즈뵈프(Chargeboeuf)[한국명 송덕망] 신부가 교장 신부로, 7월 15일 페셀(Pesche)[한국명 백학로] 신부가 당가[교구나 신학교의 경리 담당 신부] 겸 교수 신부로 부임하였다. 신학교의 개학은 1914년 9월 19일로 예정하였으나 건물 완공이 늦어져 1914년 10월 1일 성유스티노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14년 10월 3일 개학식과 함께 57명의 신학생이 등록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성유스티노신학교 학생들은 1919년 3월 5일 저녁 운동장에서 독립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등 대구·경북 지역 최초로 일제에 항거하는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미국의 윌슨(Wilson)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었고, 3월 9일에는 독립선언문 복사 및 태극기를 제작하여 만세 시위에 참여할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시위 계획은 교장 신부에게 알려져 무산되었다. 당시 한국 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일제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운 정교분리의 원칙에 동조하였는데, 3·1운동도 정치 문제로 해석하여 신학생들에게 정치 문제에 대하여 관여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성유스티노신학교는 총독부 인가를 받지 못하여 1944년 12월 23일의 서품식을 끝으로 1945년 3월 19일 일제에 의하여 강제 폐교되었다. 일주일 뒤 성유스티노신학교 건물 전체에 일본군[대구충성부 제11관구, 218부대]이 주둔하게 되었다.

[위치]

성유스티노신학교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캠퍼스 안 성김대건기념관의 동쪽에 위치한다.

[변천]

폐교 상태였던 신학교는 1946년 9월 20일 대건학교에 인수되었다. 당시 ‘대건초급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대건중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1991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이전하여 오면서 성당을 포함한 건물의 중앙 일부만 남기고 철거하였다.

[형태]

성유스티노신학교의 신학교는 붉은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며, 정면 중앙에 위치한 성당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다. 1층 앞면에는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아케이드로 구성한 통로를 설치하여 복도로 사용하였다. 지붕은 모임지붕이며, 지붕 각 면에는 창을 설치하였다. 성당부의 주 현관이 서쪽 정면의 종탑부에 위치하여 있다. 종탑은 4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종각부 위에는 계산성당의 종탑과 같이 팔각형의 높은 첨탑을 두었다.

[현황]

성유스티노신학교는 1991년 건물의 중앙 일부만 남기고 철거되었지만, 1994년 내부 바닥과 천장, 벽체를 보수하여 건물은 당시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2022년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중앙의 성당 건물만 1990년 12월 15일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성유스티노신학교는 대구의 천주교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로 종교사적 가치가 크다. 또한 서구의 근대 건축 양식과 함께 벽돌의 제조 기술과 쌓는 기술을 대구 사람에게 소개한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건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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