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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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區廳 主敎館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2[남산동 225-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고소진 |
건립 시기/일시 | 1913년 12월 4일 - 교구청 주교관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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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964년 12월 15일 - 교구청 주교관 소실 |
원소재지 | 교구청 주교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2[남산동 225 -1] |
성격 | 건물 |
양식 | 벽돌조 고딕식|조지안(Georgian)풍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던 일제강점기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의 거처.
[개설]
교구청 주교관은 드망즈(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 주교가 대구에 부임한 이후, 새로운 주교관이 필요하여 착공되었다. 서상돈(徐相敦)이 토지를 기증하고, 명동성당을 건축한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한국명 박도행] 신부도 설계에 참여하였다. 중국인 벽돌 제조업자와 건축업자, 그리고 프랑스 영사관을 지었던 전문가가 책임 목수로 일하였다고 한다.
교구청 주교관은 1911년부터 측량 및 토목공사를 시작하여 1913년 12월 4일에 건물이 완공되었다. 조지안(Georgian) 양식의 벽돌조 3층 건물이었다. 196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형태]
교구청 주교관 건물은 정면 중앙에 주출입구가 있었다. 현관 상부에 포치(porch)가 설치되었고, 좌우대칭형 구조였다.
벽체 모서리에 쌓여진 귓돌[큐인(Quoin)]은 화강석을 이용하였고, 그 위로 회색 벽돌과 붉은벽돌을 올렸다. 벽면에는 층마다 코니스(Cornice)[돌림띠]로 장식하였다. 창문은 오르내리창과 미서기창을 사용하였다. 회색 벽돌을 쌓아 결원아치(segmental arch) 형태의 창인방을 만들었고, 창선대는 리아스식[齒形]쌓기를 하였다. 지붕은 모임지붕이었고, 페디먼트(pediment), 도머창[dormer窓, 지붕의 경사면 위로 튀어나온 작은 지붕이 있는 창], 굴뚝이 설치되어 장식 효과를 주었다.
[현황]
교구청 주교관 건물은 1964년 12월 15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이때 교구 문서고도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현 주교관은 건축가 윤영도가 설계하고 1966년에 착공하여 1968년에 완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