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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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德里 |
영어음역 | Seongde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길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성덕산(聖德山)에서 이름을 따서 성덕리(聖德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김제군 만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산·나시·남포 각 일부, 상서면 부동·정동을 병합하여 성덕리라 하고 김제군 성덕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남쪽으로는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 서쪽으로는 광활면과 이웃한 평야 지역이다.
[현황]
2009년 11월 30일 현재 총 171가구에 341명[남자 164명, 여자 17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 모산(茅山)·나소(羅沼)·나시(羅是)·부서울[浮雪] 등이 있다. 모산은 나시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에 띠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 효자 강이문 정려(孝子姜以文旌閭)와 효자 강인준 정려(孝子姜仁俊旌閭)가 있다.
나소는 고현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나시에서 분리되어 생긴 작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나소(羅小)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나소(羅沼)로 고쳤다. 나시는 고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풍취라대(風吹羅帶)의 형국이라는 지관의 말을 듣고 붙인 이름이다. 마을에 효자 최주곤 정려, 효자 최주각 정려가 있다.
부서울은 성덕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창원구씨가 터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부설각시[浮雪閣氏]가 살던 마을이어서 부서울이라 하였고, 고현(古縣)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백제시대에는 무근촌현(武斤村縣), 신라시대에는 무읍현(武邑縣), 고려시대에는 부윤현(富潤縣)·임피현·만경현(萬頃縣)에 속하였다. 당시 부서울에는 죄수를 가두던 현의 감옥과 시장이 있었다.
부서울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부설각시의 장인 구씨가 만경 고을의 세금을 거두어 몽산포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가다가 곡식이 비에 젖자 통곡을 하니, 왕이 그 소리를 듣고 구씨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의 소원대로 고을 현감 밑에 있는 좌수 벼슬을 내림으로써 부서울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경 고을 좌수가 조선 천하의 좌수 중에 제일 높은 좌수다.”라는 말도 이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