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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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才驛 |
영어의미역 | Naejae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있었던 역원.
[개설]
김제 지역은 백제의 벽골군(碧骨郡)인데 신라 때 김제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전주의 속현(屬縣)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두었다. 1403년(태종 3) 김제현 출신인 명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요청으로 군으로 승격되었다. 김제군의 동쪽으로 금구현(金溝縣) 경계까지 14리, 남쪽으로 태인현(泰仁縣) 경계까지 22리, 서쪽으로 부안현(扶安縣) 경계까지 26리, 만경현(萬頃縣) 경계까지 13리, 북쪽으로 만경현(萬頃縣) 경계까지 18리, 서울까지의 거리는 541리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내재역은 김제군의 서남쪽 15리에 있었다. 1457년(세조 3) 이조에서 각도 역의 관할을 조정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두게 하였는데, 3품 이하의 조정 관원을 역로에 파견하였다. 이때 앵곡도(鷪谷道) 소관이던 내재역도 부안의 부흥역(扶興驛), 고부의 영원역(盈原驛) 등과 함께 영보도(永保道)로 통합되었다.
[변천]
1462년(세조 8) 병조의 건의로 각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여 찰방을 두었다. 이때 내재역은 삼례역(蔘禮驛), 앵곡역(鶯谷驛), 반석역(半石驛), 오원역(烏原驛), 갈담역(葛覃驛), 소안역(蘇安驛), 촌곡역(寸谷驛), 양재역(良才驛), 거산역(居山驛), 천원역(川原驛), 영원역, 부흥역과 함께 삼례도찰방(蔘禮道察訪)으로 일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