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하정리 완휴정 유허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589
한자 下亭里玩休亭遺墟址
영어의미역 Wanhyujeong Site in Hajeo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225-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허지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225-2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강승의 유허지.

[개설]

강승(姜昇)[1430~1500]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호는 완휴재(玩休齋)이다.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강순(姜純)이며 어머니는 김제조씨(金堤趙氏)로 판서 조통원(趙通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 부자와 김시습(金時習)을 스승으로 받들면서 도의지교를 맺었다. 1447년(세종 29)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송화(松禾)·대구(大邱)·벽동(碧潼)·김제(金堤)의 4개 읍에서 농업을 권장하고 학교를 진흥시켰으며, 굶주린 백성을 돌보면서 청빈하게 생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질(陞秩)되었다.

김제에 있을 때 단종세조에게 선위(禪位)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면서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 세조가 즉위한 후 강승의 치적을 높이 사 송산군(松山君)에 봉했으나 받지 않았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전라북도 김제의 봉서서원(鳳棲書院)과 삼현서원(三賢書院)배극렴(裵克廉)·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과 함께 배향되었으나 봉서서원은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위치]

하정리 완휴정 유허지는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생건마을 뒤편 구릉의 정상부 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현재는 비석 1기가 세워져 있으며, 그 주변으로 방형의 터를 잔디로 표시해 놓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