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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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化柳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Munhwa Yu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흥사동 |
집필자 | 김병학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와 흥사동에 있는 문화 유씨 집성촌.
[개설]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구월산 아래 유주(儒州)[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묵방동]에 살던 부호로, 양곡을 내어 놓고 수레 천 대를 제작하여 양곡을 운반함으로써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차달(車達)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유주는 고려 성종 때 시령(始寧)이었고, 1018년(현종 9) 풍주(豊州)에 속하였다가, 1106년(예종 1) 다시 유주가 되었으며, 1259년(고종 46) 시조의 9세손인 위사공신 유경(柳敬)의 고향이라 하여 문화현으로 승격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부(府)로 승격하였다가 곧 다시 현(縣)으로 바뀌었다.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가 1910년 신천군 문화면(文化面)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문화유씨(文化柳氏)는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형(柳衡)[1387~1454]을 입향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유차달의 14세손 유형의 후손들이 공덕면에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유형은 자 숙평(叔平), 호 무민옹으로 1405년(태종 5) 19세의 나이에 생원에 급제하여 장수 회인현감을 지냈다. 1420년경(세종 2)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유효량(柳孝良)·유효용(柳孝庸)·유효중(柳孝中)·유효장(柳孝章) 네 아들을 데리고 낙향하여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에 정착하여 백용정을 짓고 경사(經史)를 강의하고 시서(詩書)로 세월을 보냈다.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살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효행]
유광인(柳光仁)[1804~1869]은 시조의 25세손(낙향조의 11세손)으로 유명규의 아들인데 자는 군백(君伯)이다. 편모가 숙환으로 다년간 신음하는 동안에 약 시중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잠시도 옆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광무 9) 8월 황성궁동 경약소 『신간 속수삼강록(新刊續修三綱錄)』에 수록되었다.
[현황]
공덕면 황산리와 흥사동 승방마을 등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