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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39
한자 吳天久
영어음역 O Cheongu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성별
본관 보성(寶城)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개설]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인조도 그날 밤 도성을 빠져나와 강화도로 향하려 하였으나 가는 길이 차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결국 삼전도에서 화의(和議)를 하게 된다.

[가계]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명징(明徵), 호는 수재(水齋). 판서 오점(吳漸)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참봉(參奉) 오선겸(吳善謙)이다.

[활동사항]

오천구(吳天久)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곡식을 거두어 청주까지 달려갔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조의 화의 뒤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을 좇아 성리학 연구에만 전념하며 학문을 연마하고 논의하였다. 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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