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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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楫 |
영어음역 | Yu Ji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여(用汝), 호는 백석(白石). 아버지는 형조좌랑 유태형(柳泰亨)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승지에 증직된 유정(惟精)의 딸이다. 동생으로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유도(柳棹)가 있다.
[활동사항]
유집(柳楫)은 최명룡(崔命龍)·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6년(광해군 8)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김장생의 천거로 오수찰방(獒樹察訪)에 제수되었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유도와 함께 고을마다 격문(檄文)을 보내며 창의(倡義)하였다.
1626년(인조 4) 청나라의 사신이 조정에 왔을 때 운암(雲巖) 이흥발(李興浡) 등과 더불어 이를 참수(斬首)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유도·이흥발 등과 함께 창의하여 청주에 이르렀으나 이미 화의(和議)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귀향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양호호소사(兩湖號召使) 김장생의 막하에서 의병 모집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그 뒤 고향에 은거하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다가 1630년 다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고, 1636년 기린찰방(麒麟察訪), 이듬해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모두 사양하였다. 1650년(효종 1) 왕이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로 불렀으나, 병들어 나아가지 못하였다. 특히, 『대학(大學)』·『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 등을 탐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백석유고(白石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의 포계(褒啓)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증직되었다. 김제시 갈공동에 있는 백석서원(白石書院)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