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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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廷呂 |
영어음역 | Gu Jeongry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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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
성별 | 남 |
본관 | 창원 |
[정의]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직제학을 지낸 구종길(具宗吉)의 후예로서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구원이다.
[활동사항]
구정려(具廷呂)는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으로 있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정려는 경기전참봉으로 있던 오희길(吳希吉)을 비롯하여 유인(柳認), 손홍록(孫弘祿), 안의(安義) 등과 함께 「태조 어진(太祖御眞)」과 전주사고(全州史庫)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정읍현의 내장산에 있는 용굴암에 옮겨 보관했다. 당시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784권 614책 47궤와 기타 전적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되어 있었다.
구정려는 1592년 오희길과 교체하여 진주성이 함락된 후인 1593년(선조 26) 7월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정읍에서 아산으로 옮겼다. 1595년(선조 28)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강화도로 옮겼으며, 그 다음해에는 「태조 어진」을 강화도로 옮겼다. 안의는 이 때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1597년(선조 30) 9월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은 안주를 거쳐 평안도 안변의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별전으로 옮겨져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보관되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끝난 후 호종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