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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09
한자 崔直良-崔昌鶴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Choe Jikryang and Choe Changhak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 404[강정2길 48-8]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881년(최직량)|1888년(최창학)연표보기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 404[강정2길 48-8]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에 있는 효자 최직량최창학의 정려.

[개설]

최직량(崔直良)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중년에 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자 정성을 다하여 약초를 구하고 한겨울에도 잉어를 원하면 얼음을 깨고 잉어를 구해 봉양하였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아버지의 숨이 넘어가자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려 넣으니 깨어나 3일간을 더 살았다. 최직량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무덤 곁에서 움막을 짓고 마치 죄인처럼 살며 정성껏 시묘하였다.

최직량의 손자 최창학(崔昌鶴)도 할아버지를 본받아 부모에게 효도하였다 하여 정려(旌閭)되었다. 효자 최직량은 1881년(고종 18)에 명정되었고, 손자 최창학은 1888년(고종 25)에 8월에 명정되었다.

[위치]

최직량·최창학 정려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동 404번지[강정2길 48-8] 강정마을에 위치한다. 신풍동 주민센터에서 김제시 봉남면으로 가는 길을 따라 500m만 가면 오른쪽으로 강정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 황산을 바라보면 300m 앞에 모정이 있고 모정 동쪽 밭 가운데 우거진 나무 사이에 최직량·최창학 정려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최직량·최창학 정려는 팔작지붕 기와집에 정면 1칸, 측면 1칸이며, 중앙에 월석 형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m, 너비 40㎝, 두께 10㎝이며 현재 기둥이 부분적으로 깨어진 상태이다. 주변에는 애초에 담장이 있었으나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현황]

비석에는 ‘유명조선효자성균생원최직량지려(有明朝鮮孝子成均生員崔直良之閭)’와 ‘효자학생최창학지려(孝子學生崔昌鶴之閭)’라고 쓰여 있다. 또 정려를 내린 편액의 간지에는 ‘성상십팔년신미(1881)시월 명정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최직량최창학은 그 행실로 보아 효가 무엇이고 어떻게 부모를 섬기는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부모에 대하여 양지(養志)와 양체(養體)의 두 가지를 성실히 수행한 최직량최창학김제시 황산동의 일대에서 크게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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