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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A030302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 화양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천수

[농사가 뭔지도 모르고 내려왔지]

1980년대 감자 농사의 성공으로 화양마을을 포함한 광활면으로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주하였다.

이들은 현지 주민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정착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광활면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지금은 나이가 50~60대로 면과 마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임직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는 본래 있던 토백이들은 별로 없어요. 그 사람들[토박이들]은 일단 여기서 돈을 벌어갖고 딴 디로 나갔어요. [내가] 여기에 다시 내려온 지가 몇 년 됐냐면 한 18년 그 정도. 그때 아버님이 아프시고 하니까 그냥 사업 다 내던져 집어치우고, [아버님이] 시골 와서 살아라 해서 그때 들어왔죠.

[들어올 당시] 아버님 땅이 많이 있었죠. 처음 내려와서 [그 농사를] 다 지었지. 열 배미[39,669.42㎡]를 짓는데, 내가 힘이 없고, 원래 농사짓던 사람이 아니니까 농사를 잘 못 짓겄더라고, 처음에 왔을 때는. 뭣을 알아야 하지. 물어 보면 이 사람은 이 사람 농사짓는 대로 하고, 저 사람은 자기 농사짓는 대로 하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어. 그래서 농촌진흥청 작물관가 가서 [농사 방법을] 적고 혀서 농사를 지었어요. 지금은 식량 할 정도만큼은 짓죠, 먹을 거. 애들 식량 그거만 허고, 나머진 다 딴 사람들 주고. [임차한 논은] 화리(禾利) 논, 말하자면 몇 가마니 주고 짓는다 그런 거지. 여기 사람들이 보통 ‘화리 논 짓는다’고 그래요.

6월 5일인가, 내 동생이 서울서 정년퇴직하고, 새로 집 지어 가지고 저 앞으로 이사 왔는데, 집 지은 지 얼마 안 됐어요.”[송수철, 1936년생]

[감자 농사가 잘되니 내려온 거지]

이주민들이 광활을 이주지로 선택한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필요 때문이다. 1980년대 이주해 온 사람들은 하우스 감자를 적극적으로 재배했다.

당시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윤택해져서 이제는 마을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한다. 화양마을에도 당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다.

“[농사지으러] 젊은 층서 많이 오기는 왔어요. 왜냐 돈벌이가 좋으니까. [젊은 사람들은] 이제 부모가 나이도 먹고,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 봐야 하우스 [감자]허고 농사짓는 것보단 없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 거요. 들어온 지가 한 20년 넘어요. 여그 광활면에 젊은 사람들 많아요.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만 많이 들어왔어.”[임인식, 1944년생]

“[2009년 현재] 화양1구는 43혼데, 본 토종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3호 정도고 [별로] 없어.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 별스럽게 없어. 다 지 아부지 따라서 여기 온 사람들이지. 원래 우리같이 [토박이로] 사는 사람이 드물어, 여기서 출생해 가지고 사는 사람이 드물다고.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그러지. 인자 처음에는 이민 생활이 괜찮다고 해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런대로 있고 그러지.”[조용환, 1935년생]

광활은 이민자들이 만들어 가는 곳이다. 1920~1930년대 1차 이민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이민자들이 부농을 꿈꾸며 광활로 모여들었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30여 년 노력한 끝에 현재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였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보제공]

  • •  조용환(남, 1935년생, 옥포리 화양1구 이장 겸 노인회장)
  • •  송수철(남, 1936년생, 옥포리 광활노인회장)
  • •  임인식(남, 1944년생, 옥포리 화양1구 노인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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