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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30107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해수

바쁜 농사철의 농촌에서는 마을에 들어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마을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 이집 저집을 방문하다 보니 마침 한 할머니가 손수레에 뭔가를 싣고 있었다. 밭에 가야 한다며 서두르는 모습에 이야기를 청하기가 어려웠다.

“암만히도 오늘 아니먼 낼 비가 올 것 같아서, 비오기 전에 깨를 털어야 흥게.”

그래서 손수레를 끌고 바삐 움직이는 할머니의 뒤를 따라 홍산교회 근처에 있는 밭까지 갔다.

밭에는 아직 캐지 않은 고구마와 땅콩이 남아 있었는데, 참깨는 이미 베어 작은 단으로 묶고 네다리를 벌려서 말리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무덤가에 넓게 펼쳐 놓은 포장 위에 참깨 단을 내려놓고 털기 시작했다. 노인 혼자 깨를 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같이 털었다. 일손을 거들어 주자 할머니는 일을 하는 도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가 오면 부엌까지 물이 들어와 고생했지]

할머니의 이름은 김분순[1933년생]이다. 할머니는 마을 여기저기 서 있는 작은 동산들에도 이름들이 다 있는데, 자신은 그중에서 눈앞에 보이는 매봉재 아래쪽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했다.

시집오기 전까지는 그곳에 방죽[뒷방죽]이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메워서 논으로 만들었단다.

지금도 그 방죽자리 논은 수렁논으로 용수가 올라온다고 했다. 처음 분가해서 살게 된 매봉재 아래 집터는 지대가 낮아서 비가 오면 부엌까지 물이 들어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물을 길러 우물에 갈 때도 땅이 질퍽거려 힘들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자식들을 키워냈다.

마침 안동네에 해당하는 웃몰[웃멀]에 집이 나와서 이사를 했는데, 예전 집터는 폐가 정리 명목으로 면에서 나온 30만 원과 본인이 30만 원을 더 보태 논으로 만들었다.

매봉재의 지명은 과거에 그곳에 있던 서당 훈장이 매를 키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이들이 공부를 게을리 할 때마다 “매 보러 가자.”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서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열다섯짜리 원님 이야기]

김분순 할머니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려고 마을 이야기를 수집하던 막내아들에게 해 주었다는 옛날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모다 다 까먹었는디. 그전으 만경읍에 원님이 내려오셨는디, 아 열다섯 먹은 쬐끄먼 원님이셨더라네. 공부를 잘힛씅게로 원님이 되았을틴디. 아 이방이냐 머냐 그 아랫사람덜이 엥간히 무시를 혔던게벼.

하루는 원님이 일보는 아랫사람들을 다 뫼야 놓고서는 ‘자네덜 시방 저그 밭에가서 쑤시[수수] 한 개썩만 뽑아 갖고 오니라.’ 긍게 사람덜이 나이 어린 원님을 엥간히 같잖게 봤던게비지? ‘허 심심헝게 인제 쑤싯대가 먹고 싶은 게비네.’ 서로 쏙닥거림서 쑤싯대 하나썩을 뽑아 왔써. 아, 긍게 원님이 ‘자 인제 그 쑤싯대럴 너그덜 옷 속으다 뿌리까정 넣어 보니라.’ 그릿디야.

먼 영문인지는 몰라도 위에서 시킹게로 그대로 힛쓸티지. 아, 그러고 모다들 서 있으머는 을매나 우슬꺼여. 그러자 원님이 사람들헌티 물었디여. ‘그 쑤싯대가 몇 년 묵었드냐?’고 말여. 그렁게 ‘아 1년이지라우.’ 원님이 ‘응 모다들 그려? 그러머는 너그덜 1년도 안 된 쑤싯대도 너그덜 옷 속으로 다 넣지도 못허는디. 나는 15년이나 되았는디 너그덜이 옷 속으다 집어넣을라고 허니 이거시 될 말이냐?’고 말여. 그리서 아랫사람덜이 그때부텀 꼼짝없이 나이 어린 원님헌티 고분고분 힜더라네. 나도 우리 친정 하나씨한티서 들은 이야기라 진짠지 어쩐지는 몰라도 예전에 만경읍에 있었던 이야기라니까 어디 찾아봐 조깨.”

[까마귀 덕분에 범인을 찾았대]

다른 이야기 하나 더 해 달라고 하자,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엔간헌 동네는 다 산중이었어. 어떤 마을에 사는 남자가 놈팽이 맨치로 집에서 놀고. 그때만 히도 새끼들언 많이덜 낳았는디…….”라고 시작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자식들은 많고 남편은 놀기만 하니 여자가 할 수 없이 산에 가서 약 뿌리를 캐다가 먹고 살았다. 하루는 약 뿌리를 캐러 간 여자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마을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억울한 일로 돌아가신 일이 원이 되어 모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이 된 사람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 혼자서 근무를 하고 있던 경찰관에게 한 남자가 찾아와 자기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실종 신고를 했다.

그 사람을 따라서 집에 가 보니 아이들은 많고 집은 가난하므로, 여자를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밤새도록 산 속을 이리저리 수색했다. 하루 종일 산속을 찾아다니다 아침이 되었는데, 어디서 까마귀가 울어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여자가 죽어 있었다. 그런데 참혹하게도 간이 없었다.

사람들이 산짐승의 짓이라고 수군거리고 있던 참에 다시 까마귀가 까악, 까악, 까악 세 번 울고 맴돌다가 날아갔다. 그 경찰관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까마귀가 날아와서 우는 행동을 보며 나름대로 추리를 했다. 까마귀가 세 번을 찾아와서 세 번 울고 갔으니 삼삼은 구……. 그래서 혹시 이 근처에 ‘오삼구’나 ‘오구삼’이란 사람이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근처에서 큰 약방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오구삼’이라 하여 불러다 취조해 보니 그 사람이 범인이었다.

인근에 사는 큰 부자가 중병이 들었는데, 사람 간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해서 그랬다는 실토를 받아내어 남겨진 가난한 가족들에게 충분히 배상을 받게 해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이유로 경찰이 된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까마귀 때문에 해결한 실제 있었던 일화라고 했다.

[정보제공]

  • •  김분순(여, 1933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웃몰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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