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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034
한자 改新敎
영어의미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엽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전주와 군산의 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김제 지역을 편의상 서남 지역과 동북 지역으로 나눈다면 서남 지역은 군산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했으며, 동북 지역은 전주에서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전주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하였다. 김제 서남 지역으로의 개신교가 전래는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 송지동에 사는 송원성, 강문선, 최치국, 문학선, 문종삼 등이 전위렴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1896년 송지동교회를 설립하면서 처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송지동교회의 뒤를 이어 월성리교회[1903년], 대창리교회[1903년], 봉월교회[1903년], 두정리교회[1905년], 선인동교회[1905년], 옥산교회[1910년], 김제난산교회[1907년] 등이 있어 잇달아 설립되는 등 김제 지역의 개신교는 타 지역보다 일찍 지역의 학문과 문화생활 향상에 공헌할 수 있게 되었다. 주요 초기 교회를 중심으로 당시 김제 지역의 개신교를 살펴본다.

[송지동교회]

1896년 김제군 송지동(松枝洞)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은 선교사 전위렴이며 송원성과 강문성이 이 지역 최초의 신자로 입교하였다. 이후 전위렴은 송지동교회를 지도하면서 김제 지역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며 교회의 설립이 늘어나자 학교도 병설하여 운영하였다.

[월성리교회]

월성리교회는 1903년 당시 김제군 봉남면 월성리[현 김제시 월성동]에서 설립되었다. 설립된 지 2년 만에 월성학원을 설립했으며 전주선교부 아눌서 선교사의 어학교사이며 조사였던 김필수가 처음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때 몰려오는 학생들을 감당할 수 없어 다섯 칸 한옥을 건축하였다.

[금산교회]

최의덕 선교사는 전주선교부에 머물면서 전라북도 동남 지역을 선교 구역으로 정하고 조사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군산선교부에서 전위렴 선교사가 선두주자였다면 전주선교부에는 최의덕 선교사가 선두 주자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최의덕 선교사는 여가를 이용하여 조사들과 함께 꿩 사냥을 즐겼는데 당시 즐겨 찾았던 곳은 행정 구역으로 김제군 수류면 금산리[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뒷산에 있는 모악산 일대였다고 한다.

최의덕 선교사는 금산의 아랫마을인 팟정리[두정리] 마을에 있는 마방[말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전개했으며 이 과정에서 마방마을에서 만난 이자익, 조덕삼, 박화서, 왕순칠, 강평국 등이 최의덕 선교사의 말에 감동하여 개신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마방이 있는 두정리에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교회가 바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금산교회이다.

[두정리교회]

마방이 있는 두정리에서 출발했던 두정리교회는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모은 돈으로 현재 금산교회가 있는 장소에 다섯 칸짜리 예배당을 신축했는데 그 건물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내부 구조도 옛날 그대로 남아 있으며 내부 천정을 보면 1908년에 상량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내부 구조도 옛날 그대로 남아 있다. 남성 공간 상량에는 한자가 기록되어 있고 여성 공간 상량에는 「고린도전서」 3장 16-17장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남성 신도들은 한문 교육을 받았고 여성 신도들은 한글 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은 학교를 설립해서 지역 청년들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금산 지방 최초의 학교로 추정된다. 교회와 학교를 이끌어 왔던 사람들은 초창기 창설자들이었던 이자익과 조덕삼, 박화서, 왕순칠, 강평국 등이며 이들은 후일 한국 교회사에서도 주요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이중 특히 조덕삼의 삶은 개신교에 입교하면서 180도 전환되었다. 자신의 집 하인으로 있던 이자익과 함께 두정교회 신자가 되어 함께 어울렸으며 당시 교회를 이끌어 갈 장로를 선출 투표에서 천민인 이자익만 장로로 선출되고 자신과 왕순칠은 선출되지 않았는데도 조덕삼은 불만 없이 오히려 더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고 전도에 앞장을 섰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손** ㅋㅋ 종교좋네
금산은 않좋은데 ㅠㅠ
201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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