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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031
한자 宗敎
영어의미역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엽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김제 지역은 백제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고려 말 유교 도래 이후 일찍이 근대 시기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래되었다. 또한 자세한 통계는 없으나 한때는 계룡산보다도 신종교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로 모악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종교가 성행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불교]

김제 지역 불교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금산사의 창건은 김제 지역 뿐 아니라 전라북도 지역의 불교 전파에 크게 공헌했으며 법상종의 개종자인 진표율사(眞表律師)를 비롯하여 선종 개종자인 해일[만경 출생]과 진묵[만경 출생], 탄허[만경 출생] 같은 명승을 배출하는 등 대종맥을 이루어 오게 하였다. 해방 후 금산사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가 되어 그 밑에 77개의 사찰을 통할하였다.

그러나 1954년 5월의 불교 정화 이후로 비구승과 대처승 간의 분쟁이 지속되었고 전라북도 지방의 경우 끝내 화합을 이루지 못하여 대처승은 전라북도 승암사를 본부로 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산하에 그대로 별립하여 있고 사찰 재산도 1962년 「불교재산관리법」이 공포된 뒤에도 대처승의 사찰과 비구승의 사찰이 구별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후 1970년 2월 태고종이 인가됨으로서 김제 지역의 불교도 분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소속된 김제 지역의 사찰은 귀신사(歸信寺), 망해사(望海寺), 문수사(文殊寺), 청룡사(靑龍寺), 학선암(鶴仙庵), 흥복사(興福寺) 등이다. 그 밖에 김제에는 한국불교태고종 사찰과, 한국불교화엄종, 대한불교법화종 등에 소속된 사찰들도 분포되어 있다.

[유교]

김제 지역 유교의 전래는 김제향교(金堤鄕校)금구향교(金溝鄕校), 만경향교(萬頃鄕校)를 중심으로 용암서원(龍巖書院)을 비롯한 30여 개의 서원·재(齋)·강당에서 유학 사상인 충(忠)·효(孝)·열(烈)을 중심으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나아가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기는 유교가 사회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관련 유적으로는 김제향교·금구향교·만경향교를 비롯해 용암서원·삼현서원·벽성서원구성사(九成祠)·낙양사(洛陽祠)·육송사(六松祠) 등의 서원과 사당이 있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은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예우되고 칭송을 받았기에 그들의 행실이 돋보이는 경우에 국가에서 그들에게 벼슬을 내리거나 죽은 후에 가자(加資)를 주어 정려문을 세우게 하였다. 김제 지역에는 효자 나응삼 정려를 비롯하여 80여 개의 정려가 남아 있다.

[천주교]

김제 지역의 천주교는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로 많은 순교자가 나온 후인 1879년(고종 16) 드게뜨 신부가 금구 배재에서 잡혀 추방되었다가 1881년(고종 18) 뭬렐 신부와 같이 재입국하면서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 혁명 후에는 말세로구 신부가 와서 금구현 수류면[현 김제시 금산면]에 있던 전주 이진사의 재실을 구입하여 성당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 후 배 신부가 후임으로 와 48칸이나 되는 성당을 착공하여 1907년에 완공하면서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 수류본당을 이루게 되었다.

[개신교]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전주와 군산의 선교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김제 지역을 편의상 서남 지역과 동북 지역으로 나눈다면 서남 지역은 군산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했으며, 동북 지역은 전주에서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전주선교부에서 선교를 담당하였다. 김제 서남 지역으로의 개신교가 전래는 김제시 공덕면 회룡리 송지동에 사는 송원성, 강문선, 최치국, 문학선, 문종삼 등이 전위렴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1896년 송지동교회를 설립하면서 처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송지동교회의 뒤를 이어 월성리교회[1903년], 대창리교회[1903년], 봉월교회[1903년], 두정리교회[1905년], 선인동교회[1905년], 옥산교회[1910년], 김제난산교회[1907년] 등이 있어 잇달아 설립되는 등 김제 지역의 개신교는 타 지역보다 일찍 지역의 학문과 문화생활 향상에 공헌할 수 있게 되었다.

[신종교]

신종교는 기존의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 외에 190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 탄생된 종교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제 지역에서는 모악산을 중심으로 1860년 경주의 유생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시된 천도교를 비롯하여 강증산(姜甑山)[1871~1909]의 증산교, 박중빈(朴重彬)[1891~1943]의 원불교와 성덕도, 여호와의 증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한예수교 복음교회, 국제도덕협회일관도, SGI한국불교회 등 많은 신종교가 성행하고 있다.

1. 천도교

천도교는 최제우에 의해 1860년에 창시되었다. 당시는 외적의 침입으로 국권이 침탈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기성 종교의 부패와 더불어 서구의 기독교가 유입되어 우리 고유한 도덕이 말살되어 가는 시기였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개탄한 최제우는 외세의 침입을 제어하고 국기를 바로잡고 도덕을 바로 세워 불안과 도탄에 빠진 민생을 제도할 대도(大道)를 구하려 경상남도 양산시 천수산 암굴에 들어가 수도한 끝에 1860년 37세에 천명으로 동학(東學)이란 학명과 천도(天道)라는 교명을 받고 동시에 영부와 주문까지 받아 천도교의 포교를 시작하였다. 김제교구는 1894년 김제면 용동리에 교구장 임여옥이 설치하였다.

2. 증산교

증산교의 교조 강증산은 1871년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관후하고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느끼게 했고 가세가 궁해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면서도 견문을 넓혀 소년시절에 이미 학자의 명망을 얻었다. 21세에 하동정씨와 혼인한 후 처가에서 서당을 열어 훈장으로 있으면서 유교, 불교, 도교 제가서를 탐독하였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수도하던 중 강증산의 종교적 깊이에 감동을 받은 주동자들과 교단을 설립하여 증산교를 창시하였다.

3. 원불교

원불교를 창시한 박중빈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으며 호를 소태산(少太山)이라 하는데 본교에서는 대종사로 존칭한다. 어려서부터 우주와 인생에 대해 회의를 품고 15세 때 마을 뒷산에서 산신기도를 했으나 아무런 조짐이 없었고 16세부터 6년 동안 스승을 구하고 도를 구하기 위해 증산도를 체험하고 보천교신자가 되어 수도도 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이후 22세부터 독자적인 수도의 뜻을 세우고 고행 입정을 계속한 지 4년째 되는 26세 때 홀연히 지혜가 밝아져 유교, 불교, 도교, 천도교, 증산교 등의 이치를 듣는 대로 깨닫게 되었는데 원불교에서는 이를 대각(大覺)이라 한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면서 불과 수개월 사이에 40여 명의 신도를 얻어 일단의 교주가 되었다.

처음에는 정법 불교를 창도할 목적으로 ‘불법연구회’ 기성 조직 간판을 내걸고 1919년 몇 명의 제자를 데리고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에 들어가 수도막을 짓고 수련하면서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였다. 인생 생활의 요도인 사온·사요와 수양 공부의 요도인 삼학(三學)·팔조(八條)를 초안하여 혁신 불교의 이념을 제시하였다.

4. 기타

이 외에도 김제 지역에는 1961년에 창립된 여호와의 증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국제도덕협회일관도, SGI한국불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등의 신종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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