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442 |
---|---|
한자 | 近代敎育 |
영어의미역 | Modern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윤애 |
[정의]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실시된 계몽주의 교육.
[개설]
교육사적 견지에서 근대교육이라 하면 중세의 봉건적 또는 도제식 교육 형식을 거쳐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말하며, 제도적으로는 공교육 체제 또는 의무 교육제가 나타난 것으로 18세기의 일이다. 한국의 경우는 근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880년대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를 말한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교육은 주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계몽주의 교육을 말한다.
[개화기 초기 근대교육기관]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1900년대 초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도 많은 근대교육기관이 설립되어 구국 육영사업에 힘쓰게 되었다. 당시 김제 지역의 근대교육 관련 기관으로는 1905년 8월 25일 향교 청사에서 개교한 만경영창학교[현 만경초등학교], 1908년 김장호(金漳昊)가 백구면에서 개교한 신명학교[현 치문초등학교], 1908년 7월 9일 사립학교 중화학·사립 육영·사립 행수학 등 3개교를 합쳐 세운 김제삼성학교[현 김제중앙초등학교], 1910년 이낙조가 설립한 호성학교, 1911년 서도면 신명학교와 동도면 개성학교를 합쳐 칭한 금구신명학교가 있었다.
[근대교육과 학생 항일 운동]
1. 김제치문학교 학생들의 항일 운동
1943년 음력 12월 초 치문학교 학생인 5학년 반장이 일본인 여교사 마쓰오까야에 잠입하여 일장기를 찢자 백구주재소 일경이 출동하여 연행하였다. 또한 치문학교 학생들이 만경강 제방상의 호남선에 고정용 못[釘]을 50여 개나 뽑아버린 사실을 안 일본 헌병들이 김제경찰서 고등계 형사들과 1943년 2월에서부터 2개월간 수사를 진행한데 이어 4월에는 5학년 담임교사 황염규(黃廉奎)를 치문학교 학생 30여 명과 함께 부용주재소로 연행한 후 구속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학생과 주민들에게 반일·항일 및 민족정신을 고취한 김제 지역의 근대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2. 화랑회 조직
1943년 이리농림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제 출신 이상운(李相雲)이 동기생인 장지환(張志煥)·김구(金九)·호중기(扈仲基)·김부준(金芙俊) 등과 1학년생인 서기용(徐基容)·박기춘(朴基春)·강동석(姜東錫) 등을 규합하여 화랑회를 조직했으며 1년 반 동안에 120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화랑회에 협조한 인사로는 사민단(事民團)의 김직수(金直洙)·임백상(林伯相)·김환용(金煥容)·장이규(張二圭) 등과 교외 인사인 김해룡(金海龍)·김재두(金在斗)가 있었다.
화랑회는 1945년 5월 11일 23시를 기해서 김제군 금구면 오산리에 있는 고깔봉에서 광산의 폭약을 다량 탈취하여 김제경찰서 금구주재소를 습격하고 무기를 빼앗아 만경철교를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만경철교는 일본군의 중요 전략 물자 수송로였기 때문에 이곳을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하여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기 위해 거사를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 그 부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경찰관이 동원되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이후로는 징용 불응 권고, 유사시에 대비한 총기 취급 능력 함양, 일경과의 전투를 위한 체력 단련 등에 역점을 두는 계획을 자체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화약고 습격 미수 이후 1년 반이 경과한 1945년 4월 11일 갑작스런 검속과 더불어 회장 이상운의 가택이 수색되어 화랑회의 명단이 발각되었다.
그 후 이상운·장지환·장이규·김구·김직수·김환용 등이 구속되어 심한 고문과 조사로 빈사 상태에서 공판을 기다리다가 광복과 더불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 역시 학생과 주민들에게 반일·항일 및 민족정신을 고취한 김제 지역의 근대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 이때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김제 성산공원에 충혼탑이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근대교육기관]
1. 보통학교
일제강점기전라북도 김제 지역에는 만경초등학교, 치문초등학교, 김제중앙초등학교, 김제초등학교, 공덕초등학교, 금구초등학교, 원평초등학교, 청하초등학교, 부용초등학교, 진봉초등학교, 죽산초등학교, 월촌초등학교, 봉남초등학교, 백석초등학교, 용지초등학교, 성덕초등학교, 광활초등학교, 청운초등학교, 벽량초등학교, 초처초등학교, 종정초등학교, 장흥초등학교, 월성초등학교, 월산초등학교, 심창초등학교, 난산초등학교, 화율초등학교 등 총 25개의 보통학교가 있었다.
2. 중학교
1913년 4월 12일 전라북도 김제 지역 최초의 중학교로 김제공립보통학교 부설 김제공립간이농업학교가 개교했으나 1920년 4월 22일 폐교되면서 김제 지역에는 오랜 기간 중학교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후 1941년 3월 31일에는 김제여자고등여학교[현 김제여자중학교]가 개교하여 당시 일본인소학교[현 김제초등학교]에 병치되었다. 김제여자고등학교는 1941년 3월 31일 김제공립고등여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은 후 4월 10일에 김제공립심상소학교로 가교사에서 입학식을, 5월 5일에는 가교사에서 개교식을 각각 거행한 후 근대교육을 수행해 오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